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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수항리 수다사터 석탑

蔥叟 2016. 10. 4. 07:13

평창 수항리 수다사터 석탑

 

강원도 기념물 제49호. 종래 일명사지(逸名寺址)로만 알려져 ‘수항리사지’라고 불려져 왔으나, 1983년 ‘太白谷 水多寺(태백곡 수다사)’ 등의 명문(銘文) 기와가 습득되어 이곳이 수다사지(水多寺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신라시대 승려 자장율사에 의해 정선 정암사와 함께 수다사가 창건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부처님의 진실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 학자들은 중요 사적지로 지목하고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자장 이후 월정사에 주석한 스님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신효거사 범일 문인 신의 및 수다사 장로 유연을 들고 있다. 따라서 신의보다 후세대이거나 적어도 동시대인 9세기 후반 내지 10세기 초반까지의 수다사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에 의하면 지광국사 해린이 11세기 초 이곳에서 10년간 주석하였다고 한다.

 

문헌상으로는 세종실록지리지가 완성된 조선 단종 2년(1432)까지 나타나다가 동국여지승람부터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보아 약 15세기까지는 존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자장정률 慈藏定律〉 조(條)에 자장이 말년에 서울 즉 경주를 떠나 수다사에서 여생을 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7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으로 추측되나, 이 때 자장은 이미 세력을 잃은 상태였고 당시의 유물도 보이지 않으므로 초창기의 이 절은 아직 제대로 규모를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도 고려 초기의 것이 대부분이다.

 

○暮年謝辭京輦, 於江陵郡[今溟州也.], 創水多寺居焉

만년에는 서울을 하직하고 강릉군에 수다사를 세우고 그곳에서 살았다.

 

<삼국유사 자장정률 조>

 

《삼국유사》〈대산오만진신 臺山五萬眞身〉 및 〈대산월정사오류성중 臺山月精寺五類聖衆〉 조에 ‘수다사장로유연(水多寺長老有緣)’이란 인물이 보인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에 따르면 지광국사 해린(海麟)도 11세기 초에 이 절에서 10년간 주지(住持)로 있었다.

 

○有水多寺長老有緣, 重創而居, 今月精寺是也.

그리고 수다사의 장로 유연이 새로 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지금의 월정사가 바로 이것이다.

 

<삼국유사 대산오만진신 조>

 

○此月精寺, 慈藏初結茅, 次信孝居士來住, 次梵日門人信義頭*<陀,陁>來, 創庵而住, 後有水多寺長老有緣來住, 而漸成大寺.

월정사는 자장법사가 처음에는 모옥을 지었으며, 다음에는 신효거사가 와서 살았고, 그 다음에는 범일의 문인 신의 두타가 와서 암자를 세우고 살았다. 후에 또 수다사의 장로 유연이 와서 살았다. 이로 하여 점점 큰 절을 이루게 되었다.

 

<삼국유사 오대산월정사오류성중 조>

 

○太平年中加重大師戒正高妙應覺爲號住持水多寺十秊有勑移住海安寺迄于

태평년중(太平年中)에 중대사(重大師)의 법계를 진정(進呈)하고 아울러 ‘계정고묘응각(戒正高妙應覺)’이란 법호를 올리고는 수다사(水多寺)를 맡도록 하였다. 태평(太平) 10년에 이르러 현종이 칙명으로 해안사(海安寺)로 이주하도록 앙청(仰請)하였다.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1942)에 따르면 이 절터에 삼층석탑 1기 및 석불 3구와 당간지주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탑 및 주초석(柱礎石)만 제 자리에 남아 있다. 유적으로는 부재 일부가 결손되어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석탑 1기와 건물지의 주초석이 남아있다. 조선보물조사연구에 의하면 이곳에 삼층석탑 1기, 석불입상 2구, 석불좌상 1구, 당간지주 1기와 탑의 석조물이 있었으나 6.25때 유실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석탑 1기도 동란 중 도괴된 것을 부락에서 탑재를 수습하여 그 일부를 복원하였다고 하는데 강릉 신복사터 삼층석탑과 같은 가구수법을 보이고 있다. 석탑은 현재 기단부와 사리공(舍利孔)이 팬 1층 옥신(屋身)까지 잘 남아 있고, 그 위에 옥개석이 두 조각으로 나뉘어 얹혀 있다. 기단부와 1층 옥신 사이에 별석(別石) 2매(枚)가 삽입되어 있다. 석탑은 하층 기단 면석의 안상, 상층기단 갑석에 조식된 연화문, 석재를 이은 나비장의 흔적등을 볼수 있다. 탑을 세운 시기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혜린이 주지로 주석했던 11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당간지주는 옛 수항초등학교 교정에 옮겨져 있다.

 

1987년 이곳에서 청동반자(靑銅飯子)와 청동촛대가 경작 도중 발견되었다. 촛대에는 ‘大定二十八年戊申三月日造水多寺講堂燭臺重一斤六兩 弟子 安序(대정28년술신삼월일조수다사강당촉대중1근6량 제자 안서)’라 새겨져 있는데, 대정 28년은 서기 1188년이 된다.

 

▲수다사터

 

▲수다사터

 

▲수다사터

 

▲수다사터

 

▲수다사터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

 

▲석탑재

 

▲석탑재 조각

 

▲석탑재 조각

 

▲석탑재 조각

 

▲석탑재 조각

 

▲석탑재

 

▲석탑재

 

▲석탑지붕돌

 

▲석탑몸돌

 

▲석탑재편

 

▲석탑재 안상

 

▲석탑재 안상

 

 

 

<2016.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