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의 길 - 일본 대마도 세이잔지 학봉시비
세이잔지 잔디밭 정원에는 조선통신부사 학봉 김성일(金誠一, 1538-1593)선생의 시비(詩碑)가 있다. 서기 2000년에 세웠다. 학봉 김성일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하지만, 그는1590년 황윤길(黃允吉)의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됐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대한 정황을 다르게 보고해서 국가의 위기를 초래했다. 요즈음으로 치면 출장 보고를 잘못한 셈이다. 그의 시비에 적힌 시를 읽어본다.
一堂簪蓋兩邦臣 區域雖殊義則均
尊俎雍容歡意足 傍人莫問主兼賓
한 집에 의관 갖춘 두 나라 신하/ 지역은 달라도 의리와 식은 균일 하도다.
정성껏 접대함에 긴장 풀리고 환대에 족하니/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를 묻지 마시오.
이 시비(詩碑)의 건립동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학봉 김성일 선생은 유향(儒鄕)인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덕행과 훈업(勳業)이 청사에 빛나는 도학자이다. 대과에 급제하여 청관(淸官)을 두루 거친 선생은 1590년에 조선국통신사로 한일양국의 선린우호를 위한 국가외교와 문화사절로 일본국을 향한 행사(行使) 길에 올랐다. 대마도에 들려 선위사 현소(玄蘇) 승(僧)의 영접을 받고 객관인 서산사(西山寺)에 체류하는 동안 두 분은 시를 주고받았는데, 그 중 서산사와 사연(事緣)이 깊은 시를 골라 이 돌에 새겨 후세에 기리 전하고자 한다.
한글로 새겨진 김성일의 업적과 시비를 세운 이유에 대한 국한문 혼용체의 글이다. 다음은 일본어로 된 글을 그대로 옮겨 본다. 맥락은 한글 부분과 같으나 뉘앙스에 다소 차이가 있다.
유학자인 김성일(號 학봉) 선생은 대한민국 안동에서 태어나서 1590년(天正 18) 조선국 통신사로서 우리나라(일본)에 내방할 당시 세이잔지(西山寺)를 거점으로 활약한 외교 승 '게이테쓰 겐소 선사(景轍 玄蘇禪師)와 친교가 두텁고, 그 교류의 서간(書簡) 시문은 오늘까지 많이 남아 있다. 절(寺)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세이잔지의 산호(山號)인 학익산은 학봉 선생의 시문에 의해 명명됐다고 한다. 그러한 양인의 교류와 한일양국 국민의 영원한 선린우호에 기여하고, 학봉 선생의 시문을 기억하기 위해 이 비를 건립한다.
▲학봉시비
<2016.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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