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문화순례◈/일본문화권

일본 대마도

蔥叟 2016. 1. 19. 06:07

일본 대마도

 

對馬島, Tsushima Island

 

한반도와 일본 규슈 사이의 대한해협 중간에 있는 일본의 섬이다. 규슈본토까지의 최단거리는 약 80 km, 남동쪽 이키 섬까지의 거리는 47.5km이며, 한반도와의 거리는 약 49.5km이다. 섬 크기는 남북에 82 km, 동서에 18km이다. 섬 넓이는 700 km²이며, 섬의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34,610명이다. 농경지는 전면적의 3.4%이며, 대부분이 산지이다.

 

삼국시대 초에는 쓰시마를 ‘진도(津島)’라고 불렀다. 고려 말부터 고려에 조공을 하고 쌀 등의 답례를 받아갔다. 6세기전반 아스카시대에는 쓰시마 국주(對馬島主)가 일본왕부의 임명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평화 시에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의 교역을 독점하였으며, 전쟁 시에는 두 나라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이 한때 왜구의 소굴이 되자, 1389년(고려 창왕 2년)에는 빅위가 쓰시마를 토벌하였다.

 

본래 쓰시마는 아비루 가문이 지배하였으나, 12세기 고레무네노 시게히사(惟宗重尙)가 아비루 가문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한 이후, 고레무네노 시게히사의 후손인 소 가문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고려와 조선으로부터 관작을 받았으며, 쇼군으로부터 다이묘(大名)로 임명을 받는 등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양속관계를 유지하였다. 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외교창구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하였다.

 

조선 국왕은 왜구들에 대한 회유책(懷柔策)으로 통상의 편의도 봐주고 또 귀화 정책을 쓰는 등 우대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곳을 근거지로 한 왜구의 행패가 여전하자 세종 때인 1419년 음력 6월 조선의 세종이 이종무에게 명을 내려 군사 1만 7285명을 동원하여 대마도 원정을 하는 등 강경책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쓰시마 국주의 간청으로 왜인의 통상을 위하여 3포를 개항하고 그들의 편의를 도모했으며, 또한 조선의 국왕이 대마도주에게 관직을 내려 그들을 조선의 영향력 아래 두기 시작하였다. 그 후에도 조선에 근접한 왜구의 근거지로서, 이것을 무마하려는 한국의 해방정책(海防政策)에 따라 특수한 대접을 받아왔다. 그후에도 조선은 쓰시마에 대한 영향력을 오래 유지했으나,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의 근거지가 되면서부터 차츰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에도 시대(江戸時代)에는 쓰시마 후추 번(對馬府中藩)이 설치되었고, 쓰시마 도주인 소(宗) 가문이 쇼군(將軍)으로부터 다이묘(大名)로 임명을 받았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계기로 1871년에 폐번치현(廢藩置縣)으로 인하여 쓰시마 후추 번이 폐지되고, 이즈하라 현(嚴原縣)이 설치되었다. 1876년에 나가사키 현(長崎縣)에 편입되었으며, 소 가문은 일본의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는 일본 제국의 강요로 소 가문과 정략 결혼을 하기도 했다.

 

쓰시마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으나 1672년 21대 당주이자 쓰시마 후추 번 3대 번주인 소 요시자네(종의진, 宗義眞)때 작은 배가 아소만과 대마도 동부를 왕래할 수 있도록 오후나고시(대선월, 大船越)이라는 운하를 만들어 두 개의 섬으로 나뉘었고 1900년 일본 제국 해군이 러일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소만(浅茅湾)에 있는 군함을 쓰시마 동쪽 해상으로 빨리 이동시키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제키세토(万関瀬戸)라 불리는 더 큰 폭의 운하를 만들게 되었다. 만제키세토는 쓰시마 섬을 위 아래로 나누는 경계로, 쓰시마 북부를 가미시마(上島), 남부를 시모시마(下島)라 부른다.

 

중심도시는 이즈하라[嚴原]이며 이곳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고 있다.중앙부의 아소만[淺茅灣]과 인공적으로 굴착된 만제키세토[萬關瀨戶:瀨戶는 水路]에 의해  상 ·하 두 섬으로 나뉜다. 섬 전체가 해발고도 400m 내외의 산지이고, 산지의 계곡들은 곡벽이 험준하다. 예로부터 한국과 대륙 사이의 중계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여 대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동서 폭은 18㎞, 남북의 길이 82㎞이며 본 섬 외에 107개의 섬이 있고 그 중 5개 섬이 유인도이다. 본 섬은 두 개의 섬으로 나눠져 있고, 이를 만제끼 다리가 연결하고 있다. 행정을 살펴보면 1市 6町 (쓰시마市, 이즈하라마치, 미츠시마마치, 토요타마마치, 미네마치, 카미아가타마치, 카미쓰시마마치) 이다.

 

농경지는 총면적의 4%에 불과하고 계단식 밭이 많으며 최근까지 화전 경작을 했다. 산촌에서는 숯 구이와 표고버섯 재배가 주업이었으나 조림이 이루어졌다.  오징어 ·도미잡이와 전복 ·소라 ·성게 ·천연김 채취를 하고, 아소만에서는 진주조개 양식이 성하다. 중심도시 이즈하라는 13세기 중엽 이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에 이르기까지 쓰시마를 지배해온 소씨[宗氏] 일족의 거성(居城)이 있던 곳으로 성터와 그 시주사 등이 남아 있다. 현재 육상, 해상, 항공 자위대가 주둔하고 있는 일본 최 서북단 군사 요충지이자 이끼섬과 더불어 일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일본 관광객이 왕래하고 있으나 젊은층은 본토로 빠져나가고 노령화가 가속화 되고 있다. 인공림의 대부분은 쓰기(삼백나무)와 히노끼(측백나무)이며 이를 경제가치로 환산하면 일본 국민이 3년 동안 먹을 식량과 교환이 가능할 정도이다.

 

▲대마도

 

▲대마도

 

▲대마도

 

▲대마도

 

▲대마도

 

▲대마도

 

▲대마도

 

▲대마도

 

▲대마도

 

▲히타카츠항

 

▲히타카츠항

 

▲히타카츠항

 

▲히타카츠항

 

 

 

<2016.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