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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청룡사터 위전비

蔥叟 2015. 12. 20. 07:22

충주 청룡사터 위전비

 

청룡사 위전비(位田碑)는 숙종 18년(1692년)에 청룡사의 창건 및 경영 등에 관련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신도들이 전답을 기증한 내용을 적은 비석이다. 시주한 신도들의 이름과 품목 및 수량을 적고 있어 당시 사찰의 경영 상태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비문에는 2, 3차례 추가로 기록한 부분도 있다. 청룡사는 고려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초기에는 보각국사가 머물면서 번성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나 그 이후의 사실은 이비로서 짐작할 수 있다.

 

이 석비는 2m가 넘는 크기의 4면비이며 귀부와 비신, 옥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이라 한다. 귀부는 폭이 좁고 높이가 높아 안정된 느낌은 없다. 목은 짧고 두꺼운 편이어서 둔중한 느낌이 든다. 얼굴은 풍화가 심한 편이나 이목구비의 윤곽만 두루뭉술하게 조각하여 섬세한 맛이 떨어지는 조선시대 후기 조각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목이 짧고 귀갑을 두껍게 표현한 만큼 얼굴이 귀갑에 바짝 붙어 있고 치켜든 모습을 하고 있다. 귀갑은 매우 두껍게 표현되어 있어 발과 꼬리 등은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귀갑무늬를 반복해 귀갑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상부 중앙에 장방형의 홈을 파고 그 주변을 돋우어 비신을 꽂도록 하였다. 비신은 장방형의 판석으로 사면에 모두 글을 새겼다.

 

글은 모두 종서로 새겼으며, 맨 앞에 역시 종서로 ‘靑龍寺位田塔記’라는 비명을 새겼다. 옥개는 우진각 지붕 형식이다. 처마 끝은 약간 반전시켰으며, 용마루와 추녀마루에 용을 새겼다. 용마루 양쪽 끝에 서로 마주 보도록 두 마리의 용을 새겼고, 각 추녀마루 끝에 각 1마리의 용을 새겼다. 지붕면에는 아래쪽에 구름을 조각했고 위쪽에는 서로 꼬고 있는 용의 몸을 조각했다. 이처럼 옥개에 용을 새긴 것은 비석의 이수를 채용하는 고식(古式)의 기법과 지붕 형식을 채용하는 조선시대의 기법을 혼합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 비석이 지니는 독창적인 면이라 할 수 있다.

 

▲위전비

 

▲위전비

 

▲위전비

 

▲비신

 

▲이수

 

▲이수

 

 

 

<2015.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