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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법천사터

蔥叟 2015. 11. 25. 08:26

원주 법천사터

 

법천사(法泉寺)는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법상종 사찰로 명봉산(鳴鳳山) 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지광국사 현묘탑비와 법당터 및 석탑의 일부 등이 남아 있으며, 주변에는 이 절터에서 나온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절터의 동편 산 기슭에는 지광국사의 부도를 모셨던 탑전지가 남아있다. 부도는 서울로 옮겨졌으나 탑비는 그대로 남아있다. 탑전지는 높게 쌓은 축대 위에 건물을 지었으며, 왼쪽의 건물 터 위에는 기둥을 받치던 돌인 주초석, 불상의 뒤를 장식하던 광배, 계단 사이를 장식하던 대담하고 화려한 조각의 답도석(踏道石), 그리고 예배를 드리던 단인 배례석, 석탑재 등 이곳에서 출토된 석재를 모아놓았다.

 

이 절에 관하여 남아있는 최초의 기록은 신라 경순왕 2년(928)으로 신라 하대에 이 지역의 대표적인 사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무신정권 이전까지 법상종의 대표적 사찰로 문벌 귀족의 후원을 받아 번성한 사찰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관웅(寬雄), 지광국사, 정현(鼎賢), 덕겸(德謙), 관오(觀奧), 각관(覺觀) 등 유명한 승려가 계셨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유방선(柳方善)이란 학자가 이 곳에 머물며 제자를 가르쳤다고 하며, 이때 한명회, 서거정, 권람 등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허균의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최근 이루어진 법천사터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절터에 대한 전모가 밝혀지고 있. 중심사역은 회랑 안에 절의 본당인 금당(金堂)과 불경을 연구하고 논하는 강당(講堂)이 일직선상에 있고, 강당 앞에 탑 2기가 세워진 구조로 드러났다. 사찰의 전성기였던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심사역은 강당인 무설전과 금당인 대웅전이 직선상에 놓여 있고, 대웅전 앞에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불국사와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법천사지의 중심사역은 남북 72.6m, 동서 52.5m, 면적 3811인 직사각형 형태다. 금당은 남북 14.4m, 동서 17.3m의 기단에 정면 3, 측면 3칸으로 지어졌고, 강당은 남북 16.8m, 동서 35.8m의 기단에 정면 7, 측면 3칸으로 건축됐다.

 

또 금당 앞의 동쪽과 서쪽에는 석탑 지대석 2기가 중앙 보도를 중심으로 대칭적으로 놓여 있다. 탑이 있던 자리 앞에서는 구조물 기초부에 흙과 돌을 채워 넣은 적심(積心)이 각각 발견됐는데, 서탑의 적심 위에서는 육각형 지대석도 함께 나왔다. 이 지대석은 불상을 올려놓는 대좌와 석조보살상의 다리 부분이 과거에 수습됐고, 이번에는 불상의 몸통 부분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 공양보살상을 안치하기 위한 돌로 보인다. 동탑 터의 적심석 위치로 보면 여기에도 공양보살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져 탑 2기 앞에 공양보살상이 각각 있었던 것으로 보여 국내에서는 최초의 사례로 보인다. 강릉 신복사터, 평창 월정사, 논산 개태사에도 탑 앞에 공양보살상을 둔 예가 있지만, 이들 사찰은 탑과 불상이 하나뿐이다.

 

▲법천사터

 

▲법천사터

 

▲법천사터

 

▲법천사터

 

▲법천사터

 

▲법천사터

 

▲법천사터

 

▲법천사터

 

▲법천사터

 

▲법천사터

 

▲법천사터

 

▲법천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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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터

 

▲법천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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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터

 

▲법천사터

 

▲법천사터

 

 

 

<2015.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