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을 찾아서 - 보길도 부용동 낙서재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1637년(인조 15년)에 들어와 1671년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윤위의 보길도지에 따르면, 처음 이곳에 집을 지을 때는 수목이 울창해서 산맥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사람을 시켜 장대에 깃발을 달고 격자봉을 오르내리게 하면서 그 높낮이와 향배를 헤아려 집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렇게 잡은 낙서재 입지는 보길도 안에서 가장 좋은 양택지라고 한다. 이곳은 강학하고 독서하면서 소요하고 은둔하고자 하는 선비의 생활공간이었다. 최근 낙서재 마당 북쪽에 고산이 달구경하던 귀암(龜巖)이 발견되어 남쪽의 소은병과 낙서재, 귀암의 축선이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모옥(茅屋)으로 지어 살다가 그 뒤에 잡목을 베어 거실을 만들었는데 후손들에 의해 와가(瓦家)로 바뀌었다.
주자가 경영한 중국 복건성 승안현 무이산의 대은봉(大隱峯) 건너편에 있는 봉우리 이름으로, 윤선도는 산속에 은거하며 학문에 몰두한 주자의 행적을 따른다는 뜻에서 낙서재 뒤편 바위에 이 이름을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은병 바위 위에는 삼각형의 홈이 크게 파여 있어서 빗물이 고이면 바위벽을 타고 흘러내리게 되어 있다. 윤선도는 숲이 빽빽한 이 부근에 나와 사색에 잠기곤 했다고 한다. 북쪽에 있는 낙서재와 귀암이 이 바위와 축을 이룬다. 서재는 곡수 남쪽 두 골짜기 중앙에 입지한 강학을 위한 건물로 건립 당시에는 학유공 정유악(鄭維岳), 심진사단(沈進士檀), 학관(學官, 고산5남) 등 여러사람이 고산 선행에게 배우던 곳이다.
▲낙서재
▲낙서재
▲낙서재
▲낙서재
▲낙서재 소은병
▲낙서재 동와
▲낙서재 서재
▲낙서재 서재
▲낙서재 서재
▲낙서재 서재
▲낙서재 서재
▲낙서재 서재
▲낙서재 전사청
▲낙서재 전사청
▲낙서재 전사청
▲낙서재 전사청
▲낙서재 귀암
▲낙서재 귀암
<201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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