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아대륙문화순례◈/인도문화권

인도 불탑의 전형 - 산치 제3탑

蔥叟 2015. 4. 15. 06:19

인도 불탑의 전형 - 산치 제3탑

 

대탑은 오늘의 본편으로 남겨두고 먼저 아담한 제3탑으로 향하였다. 제3탑은 대탑에서 북동쪽으로 45m 떨어진 위치에 있는데 규모면에서는 직경 15m, 높이 8.23m로 대탑보다 훨씬 작지만 대탑의 모델이 된 탑이었다. 한 개의 탑문(Torona)를 가지고 있으며, 반구형의 탑신 위에는 사각의 테라스가 있고 한 개의 보개가 우산모양으로 얹혀 잇다. 대탑과 마찬가지로 탑신의 중간에 원형의 테라스가 있고 사각기둥과 타원형의 난간이 있다. 테라스 난간의 사각 기둥 중 몇 개에는 꽃무늬 등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 의하면, 한 사람이 두 개 탑의 계단 난간을 공양 올리는데 관여했다고 한다. 계단과 난간의 조각은 서기전 2세기 때 덧지었다고 한다. 남족으로 나 있는 2개의 탑문은 높이가 5m이며 1세기 초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을 하며, 대탑에서 볼 수 있는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제3탑의 탑신 중앙의 테라스의 높이에서 부처님의 두 상수제자이신 사리뿟따(Sariputta, 사리불)와 목갈라나(Mogggalana, 목련)존자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부처님의 양대 제자.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있을 때 귀의한 제자들이다. 그들은 교단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그들이 없었다면 인도불교는 훨씬 더딘 발전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은 부처님 보자 먼저 입적했다. 그들의 입적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매우 비통해 했다고 한다.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대탑, 사리풋타·목갈라나 존자의 사리를 안치한 제3탑은 그래서 가까이 있는가 보다.

 

제3탑의 상륜부는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평두와 함께 돌로 조성된 일산이 하나있다. 산치대탑에는 일산이 3개가 남아 있지만 제3탑에는 한 개만이 남아 있다.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진 불탑에는 일산이 조성되어진 이유에 대하여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대반열반경〉에는 “전륜성왕의 다비를 마치면 사리를 수습하여 탑을 세우고 그곳에다 비단 번기와 일산을 세우라!”(〈대정신수대장경〉 1권 199쪽 하단)고 하였으며, 〈장아함경〉에는 “세상에는 마땅히 탑을 세워 향, 꽃, 일산을 비롯하여 기악으로 공양해야 하는 4종류의 부류가 있는데, 여래, 벽지불, 성문, 전륜성왕을 말한다.” (〈대정신수대장경〉 1권 20쪽 중단)라고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처럼 고대 인도에서는 일산이란 빛을 가리는 용도 이외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으로 사용되었으며, 고귀와 존경의 상징물 이었다.
이러한 일산이 중국의 불탑에서는 수레바퀴로 바뀌게 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차후에 알아보기로 한다.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산치 제3탑

 

 

 

<2015.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