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영묘사터 얼굴무늬수막새
수막새는 목조건축에서 지붕의 기왓골 끝에 얹는 것으로 무늬는 연꽃이 많지만 사람 얼굴을 새긴 경우도 흔지 않다. 곱게 다진 흙으로 만든 이 얼굴무늬수막새는 높은 온도의 불에 구워서 단단하다. 뒷쪽 윗면에는 긴 원와(圓瓦)를 접합했던 흔적이 있다. 얼굴은 틀로 찍지 않고 손으로 빚어 양쪽 눈과 광대뼈가 비대칭을 이루는 등 표현이 자연스럽다. 테두리는 넓은 편인데 무늬를 넣지 않았다. 큼직한 코와 위로 올린 입꼬리의 고졸한 미소 등. 정형화 되지 않은 모습에서 신라 미술의 자연스러움이 엿보인다.
▲얼굴무늬수막새
얼굴무늬 수막새가 발견된 장소는 발견 당시 경주읍 사정리였다고 한다. 사정리는 국당리라고도 불리며,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가 있던 곳으로 전해오던 곳이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이래 한동안 이 수막새는 흥륜사터 출토품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사정리는 흥륜사가 아니라 영묘사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절터에서 '대영묘사(大令妙寺)'나 '영묘지사(靈廟之寺)' 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따르면 영묘사는사천의 꼬리(沙川尾)에 있다고 하는데 사천은 곧 남천을 뜻하므로 이곳이 지금의 사정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원래 흥륜사터는 사정동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금의 경주공고 자리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로 보아 얼굴무늬 수막새는 영묘사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
▲얼굴무늬수막새
영묘사는 선덕여왕(632~647) 때 창건된 사찰로, 석가모니부처 이전 시대에 있던 일곱 개의 절터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신라 불교의 성지이다. 영묘사에는 선덕여왕의 세 가지 지혜로운 일에 대한이야기가 전한다. 이 절에는 선덕여왕을 짝사랑 하다가 탑을 돌며 불로 변해 죽은 지귀의 이야기가 전한다. 이 절에는선덕여왕 때 활동했던 고승 양지가 만든 전탑의 기와도 있었다. 이처럼 신비로운 일들이 많던 이 절의 어느 건물에 얼굴무늬수막새가 올려져 있었는지 궁금하다.
▲얼굴무늬수막새
<201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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