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 키타라를 연주하는 아폴로신상
THE GOD APOLLO PLAYING THE CITHARA(APOLLO CITHAROEDUS)
대리석
Miletus
로마 AD 2세기
아폴로는 그리스 종교에서 다양한 기능과 의미를 지니는 신으로, 그리스의 모든 신들 중 가장 널리 숭상되고 영향력 있는 신이다. 그의 본래 성질은 분명하지 않지만, 호메로스 시대 이래로 그는 신적인 거리를 지닌 신으로, 멀리서 메시지를 보내거나 위험을 경고해주고, 인간에게 그들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정화시켜 주며, 종교적인 법과 도시의 법령들을 주재하고, 예언과 신탁을 통해 인간에게 미래의 일과 그의 아버지인 제우스의 뜻을 전달해 주었다. 신들조차 그를 두려워했으며,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레토만이 그의 존재를 견디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거리감·죽음·공포·두려움은 그를 상징하는 활에 집약되어 있다. 반면 그의 보다 부드러운 성격은 그의 또다른 상징물인 리라에서 보이는데 이는, 음악·시·춤을 통해 올림포스(신들의 거주지)와의 교류의 기쁨을 나타낸다. 또한 민간에서는 그의 별칭인 알렉시카코스('악을 막아주는 사람')가 시사하듯이 야생동물과 잔병에 대한 신성한 수호자로서 농작물과 가축의 신이기도 했다. 그의 별칭인 포이보스는 '밝다' 또는 '순수하다'는 의미로, 그가 태양과 관련되어 있다는 견해가 널리 퍼졌다(→ 헬리오스 ). 아폴론의 또다른 별칭은 노미오스('목동')였는데, 그는 제우스의 무기를 만들던 키클롭스들을 죽인 데 대한 벌로 페라이 왕 아드메토스의 마부와 목동이라는 천한 신분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리케이오스라고도 불렸는데, 이 별칭은 아마 그가 늑대들(lykoi)로부터 양떼를 보호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목동들과 양치기들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음악을 즐겼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것이 아폴론의 원래 역할이었다고도 주장했다.
아폴론은 모든 신들 중 가장 그리스적인 신이었지만, 그 기원은 분명 외래적인 것으로 그리스 북부나 아시아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아폴론과 쌍둥이 누이인 아르테미스는 델로스 섬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아폴론은 피토(델포이)로 가서 그 지역을 수호하던 암룡 피톤을 죽였다. 그는 돌고래로 가장하여 크레타인의 배 위로 뛰어올라 선원들을 그에게 복종시킴으로써 그의 신탁소를 세웠다. 그리하여 피토는 돌고래(delphis) 사건 이후 델포이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예전에 그곳에서 숭상되던 땅의 여신인 가이아 대신 아폴론 델피니오스가 숭상되었다. 초기 그리스 시대(BC 8~6세기)에 델포이 신탁의 명성은 멀리 아나톨리아의 리디아까지 퍼져나가 그리스 전역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했다. 아폴론의 중개인 피티아는 50세가 넘는 그 고장의 여자로서 아폴론의 영감을 받아 아폴론의 주(主)신전에서 신탁을 전했다. 그러면 성직자들이 그 신탁들을 해석하고 운문으로 만들었다. 그리스 본토와 델로스 및 아나톨리아에도 아폴론의 다른 신탁소들이 있었지만, 델포이의 신탁소 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
아폴론을 기리는 그리스의 축제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8년마다 열리는 델포이 스텝테리온으로, 이 축제 동안에 소년이 피톤의 살해 장면을 재연하고 일시적으로 템페 계곡으로 추방되었다. 아폴론과 관련된 연애 사건들은 많지만 대부분 불행하게 끝난다. 다프네는 그에게서 도망치려고 애쓰다가 월계수로 변했으며(그후 월계수는 그를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음), 코로니스(아스클레피오스의 어머니)는 부정한 행위가 드러나 아폴론의 쌍둥이 누이 아르테미스의 화살을 맞아 죽었으며, 카산드라(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딸)는 그의 구애를 거절한 끝에 진실한 예언들을 해도 아무도 믿지 않게 되는 벌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아폴론이 일찍부터 알려졌으며, 그리스에서처럼 주로 치료 및 예언과 연관되었다. 그의 신전 가까이에서 악티움 전투(BC 31)가 벌어졌기 때문에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그를 크게 숭배했다. 미술품에서 아폴론은 수염이 없는 젊은이로 묘사되는데, 옷은 입고 있기도 하고 벗고 있기도 하며, 활이나 리라를 들고 있는 경우도 많다.
'기타라'는 고대 그리스의 2종류의 리르 가운데 하나리다. 나무로 된 공명판과 상자 모양의 몸통(공명통), 여기에서 뻗어나온 2개의 텅빈 나무팔에 횡목을 붙여 줄을 매달았다. 처음에는 현이 3개였으나 나중에 12개까지 늘었고, 이것들은 횡목에서 악기 몸통의 맨 아래까지 연결되었으며 그 사이의 공명판에는 줄받침이 걸려 있다. 현은 대개 채로 연주했고 소리내는 현 이외의 현들은 왼손으로 감싸 불필요한 배음을 없앴으며, 때로는 여러 현들을 동시에 누르거나 배음을 내기도 한다. 독주 악기로 사용할 때는 양 손으로 현을 뜯어 연주했다. 바로 세워 연주하거나 연주자 쪽으로 약간 기울여 어깨나 팔목에 기대기도 했다. 그리스 시대 초기에는 서사시 가수인 랍소도이가 키타라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고, 호메로스의 시에 나오는 포르민스는 키타라로 추정된다. 이후 키타라는 전문 연주자이자 가수들인 키타로도이의 리르가 되었다. 로마 시대에는 라틴식으로 개량되어 로마인들의 중요한 현악기로 사용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 유럽의 라틴어 저술들에 자주 인용되는 '키타라'는 리르의 당시 형태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하프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그밖에 기타·시턴·치터 등 많은 악기 명칭들이 키타라에서부터 유래했다.
▲키타라를 연주하는 아폴로신상
▲키타라를 연주하는 아폴로신상
▲키타라를 연주하는 아폴로신상
▲키타라를 연주하는 아폴로신상
▲키타라를 연주하는 아폴로신상
<2014.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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