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실상사 고려정원유적
실상사 동편 담장 바깥 구역 일대에 초대형 고려시대 정원시설이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발견됐다. 발굴조사 결과 강돌을 바닥에 촘촘히 깐 평면 타원형의 독특한 모습인 연못과 여기에 물을 끌어들이는 입수로(入水路)와 빼내는 배수로, 그리고 이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는 건물터 2동을 비롯한 정원시설을 찾아냈다. 이 중에서 연못인 원지(苑池)는 길이 16.05m에 폭 8.06m 규모로 바닥에 강돌을 대체로 한 줄씩 편평하게 깔아 처리하는 한편 주변 호안석축(湖岸石築) 또한 같은 종류의 강돌을 쌓아올려서 만들었다. 바닥 중앙에는 다른 강돌과는 달리 청색 빛이 도는 돌을 안치했다. 이는 아마도 원지를 만들 때 기준점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돌 사이에는 명황색 점토와 숯을 이용해 방수처리를 했지만 내부에서 뻘 층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보아 맑은 연꽃 같은 식물을 기르지는 않았다고 추정된다. 나아가 한 귀퉁이에서 출수구(出水口)로 보이는 시설이 발견됨에 따라 끌어들인 물은 일정한 높이로 유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곳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입수로(入水路)는 현재까지 발견된 규모만 길이 42.6m 구간에 이른다. 폭 1.2m이며 강돌을 바닥에 깔고 측면에 쌓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원지유적 전경
▲원지와 입수구
이 직선 수로가 연못과 만나는 지점에 잇대어 만든 다른 수로는 곡선에 가까우며, 연못 한쪽 면을 따라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수로 형태는 중국이나 일본의 고대 정원 시설에서는 신라 포석정과 마찬가지로 술잔을 띄워놓고 시를 읊던 연회인 곡수연(曲水宴)과 관련 깊은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끈다. 이 곡수 형태의 수로는 길이 13.8m에 폭 1.0m였다. 이번에 발견한 원지는 그것이 위치하는 방향성을 고려할 때 실상사 경내에 위치한 고려시대 초기 목탑 터와 동서방향 축이 일치한다. 나아가 이 일대에서는 고려 초기 유물이 집중 출토하는 점으로 보아 이 정원시설은 실상사 경내 목탑과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수로 갖춤 정원시설은 고려시대 불화에 비슷한 형태가 보이며, 일본에서는 후루미야(古宮)유적이나 헤이조궁(平城宮)의 동원(東苑) 등지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견됐다. 나아가 이번 발굴에서는 연화문 수막새, 초화문 암막새, '實相寺'(실상사)라는 글자가 적힌 기와를 비롯한 각종 유물 100여 점이 수습됐다. 이번 발굴 지역은 현재의 실상사 담장 바깥이라는 점에서 고려시대 실상사는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넓은 거찰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12세기 고려시대 원지(苑池)는 높이에 차이를 둬서 3단 형식으로 조성했다. 가로·세로 16X8m 크기의 타원형 연못 시설 바닥에는 40㎝∼1m 크기의 강돌이 촘촘하게 깔려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질 정도다.
▲원지와 입수구
▲원지
이 연못의 조형적 특색과 함께 용도에 대한 흥미로운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연못을 통해 한국 불교사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신라시대의 교종(敎宗) 전통이 고려시대에는 수행자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禪宗) 중심으로 점차 변해가는데, 그런 흐름을 실상사 연못이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화경』같은 불교 경전에서 연못은 연꽃이 피어 있는 극락정토의 공간, 즉 구품연지(九品蓮池)로 그려진다. 구품연지를 실재 사찰에 조성할 경우 위치는 대개 사찰의 남쪽, 당간지주(幢竿支柱)나 일주문(一柱門) 부근이다. 그런데 실상사에서 발견된 이 연못은 사찰의 동쪽 담장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찰의 동·서·북쪽은 대개 승려들을 위한 공간이다. 때문에 실상사 연못은 교학적 세계관의 표현이 아니라 승려 수행공간의 일부였을 수 있다. 불교 경전을 기반으로 설계했던 기존의 사찰 건축 방식에서 벗어나 스님들의 수행공간을 위해 별도의 정원을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는 얘기다. 실상사 연못이 조성된 12세기 초반 불교계는 왕실·중앙귀족 중심의 교종에 맞서 지방호족·방계왕족과 관련 있는 선종이 실상사의 남원처럼 각 지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반영해 승려를 위한 정원 시설이 사찰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원지
▲원지와 출수구
연못이 정확하게 어떤 용도였는지는 아직 단정짓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엄밀히 따지면 연못이라고 부르기 애매하다. 연꽃이 자랄 수 있는 진흙 바닥이 아니어서다. 연못 바닥은 황색점토·숯 등을 이용해 방수 처리를 했다. 연못에 연결된 42m 길이의 입수로, 출수구(出水口) 등을 통해 복원된 청계천처럼 맑은 물이 고였다가 배출되는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원에 있는 못, 원지라고 부르는 게 적절하다. 연못 위쪽 부지에서는 건물터 2곳도 발견됐다. 그중 한 곳에는 누각이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못을 관찰하기 적당한 위치다. 고려 시대 실상사의 수행자들은 연못의 맑은 물, 그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참선수행을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연못의 시설은 12세기 조성 당시 정원의 일부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못의 배수로 동쪽은 아직 미발굴 상태다. 누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전모도 역시 연못 동쪽을 추가 발굴해야 보다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있다.
▲출수구
▲출수구
▲출수구
<2014. 6. 15>
'◈한국문화순례◈ > 지리산문화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청 남명집 (0) | 2014.10.06 |
---|---|
함양 마천마애여래입상 (0) | 2014.07.18 |
실상사의 승탑 - 남원 실상사 팔각원당형승탑 (0) | 2014.07.16 |
실상사의 승탑 - 남원 실상사 자운대화상탑 (0) | 2014.07.15 |
실상사의 승탑 - 남원 실상사 회명당대선사탑 (0) | 2014.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