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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갈래길 - 중국 감숙성 하서주랑(河西走廊, Héxī zǒuláng)

蔥叟 2012. 8. 23. 06:31

실크로드 갈래길 - 중국 감숙성 하서주랑(河西走廊, Héxī zǒuláng)

 

   중국의 옛 수도 서안에서 위수(渭水)를 따라서 서쪽으로 가면 난주에 이르고, 여기에서 다시 황하를 건너면 앞길이 점점 황량해진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황하를 그냥 하(河)라고 불렀다. 황하의 서쪽에 해당하는 이 지방은 광범위하게 '하서(河西)'로 불러왔다. 대실크로드(絲繰之路)는 기점인 장안성에서 출발하여 란저우(蘭州)를 지나고 나서 긴 복도 같은 곳을 빠져나가면서 하서사군(河西四郡)을 차례로 경유하여 본격적으로 사막으로 나아간다. 하서주랑이란 동쪽은 오초령(烏鞘嶺)에서 서쪽은 옥문관(玉門關)사이의 남산(南山 : 祁連山, 阿爾山)과 북산(北山 : 馬鬃山, 合黎山) 및 용수산(龍首山) 사이의 길이 약 9백여 KM에 이르는, 서북 동남 방향으로 늘어선 좁고 긴 평지로, 복도모양과 같고 또한 황하의 서쪽에 있다하여 최근에 불리는 이름이다.

 

▲하서주랑

 

    그 행로는 란저우(蘭州) 우웨이(武威, 凉州) 장예(張掖, 甘州) → 지오치엔(酒泉, 肅州) 안시(安西, 瓜州) 등의 오아시스 마을을 5일 간격으로 주파하여 대략 한 달 만에 둔황(敦煌, 沙州)에 도착하게 된다. 이 하서주랑은 한 무제(武帝) 때부터 서역경영의 일환으로 개척하기 시작하여 그 이후 중원의 영향력 아래로 즐어온 지역으로 신강(新彊) 위구르(回鶻)를 거쳐 서역제국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통로이며, 고대 실크로드의 일부분으로서 고대 중국과 서방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를 담당했던 중요한 국제적인 소통로였다. 그곳에 거주하는 민족으로는 한족과 몽골족, 위구르족, 티베트족 등의 다양한 민족이 있다.

 

   하서주랑(河西走廊)이라는 실크로드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열차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고대 중국역사에서 한 장을 장식했던 현장을 통과하고 있었다. 하서주랑은 동쪽은 오초령에서 시작해 서쪽은 옥문관에 이르며, 남산(기련산맥과 아미금산)과 북산(마종산, 합려산 및 용수산) 사이에 끼어 있는, 길이 약 1천 킬로미터에 너비 수km에서 100km에 이르는, 좁고 긴 평지이다. 복도 모양과 같이, 황하의 서쪽에 있다 하여 하서주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실크로드 전도

 
   한마디로 말하면 하서주랑은 난주에서 돈황까지 이어지는 긴 협곡이다. 이곳은 고대 중국에서 중원을 지배하는 왕조가 서역 쪽에서 몰려오는 이민족을 막아내는 전략 요충지였다. 만일 여기를 막지 못하면 바로 서안이 위협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역대 중국 왕조는 이곳에 성벽을 쌓고 철옹성의 방어진을 구축했다. 

 

   하서주랑은 북쪽으로 고비사막, 남쪽으로 기련산맥에 막혀서 자연스럽게 긴 복도형태의 지형을 이루게 된 것이다.  대상들은 서안을 출발하여 란주의 나루터에서 황하를 건넌다. 그리고 하서회랑이 시작된다.  하서회랑의 마지막 지점인 돈황을 지나면 본격적인 서역땅으로 타클라마칸사막 남북의 실크로드 기선인 서역남로와, 천산남로로 진입할 수 있다.

 

   하서주랑은 좁고 긴 입구에 해당되는 곳으로, 고대부터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다시말해, 하서주랑을 제압한다면 중국고대왕조의 입장에서는 서역과 직접교역이 가능해지고 더불어 북방의 기마유목국가를 압박할 수 있다.  반대로,  기마유목국가가 하서주랑을 제압한다면 서역국가들과 중국의 경제외교적 연결을 끊고, 중국본토를 보다 쉽게 공략할 수 있게 된다.

   하서주랑의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이 지역은 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 증거가 바로 만리장성이다.  만리장성은 기마유목민들의 침략을 방어하기위해 세워진 장성이다. 춘추전국시대부터 명나라까지 지역별로 여러번 증개축되면서 현재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2012.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