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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집, 동궐 - 서울 창덕궁 돈화문

蔥叟 2013. 6. 10. 00:51

 조선의 집, 동궐 - 서울 창덕궁 돈화문

 

   창덕궁에 들거가기 위해서는 돈화문을 지나야 한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의 대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1412년 5월에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40년(1607)에 재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원년(1609)에 완공하였으며, 이때의 모습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광해군 때의 중건 이후 경종 원년(1721)에 한 차례 보수한 기록이 있고, 고종 때인 1890년대에는 왕실의 자동차가 출입할 수 있도록 문지방을 빼고 끼울 수 있게 하였으며, 현재는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문지방이 없는 상태이다.  돈화문에는 원래 현판이 없다가 성종 때 서거정에게 분부하여 이름을 지어서 걸게 하였다.  

 

▲돈화문

 

▲돈화문

 

   ‘돈화(敦化)’라는 말은 원래 중용에서 인용한 것으로 ‘공자의 덕을 크게는 임금의 덕에 비유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여기에서는 의미가 확장되어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교화 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2층 문루에는 종과 북이 있어 정오(正午)와 인정(人定), 파루(罷漏)에 시각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정오를 알리기 위해 북을 치는데 이것을 오고(午鼓)라고 하며, 인정은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28번 종을 치는 것이고, 파루는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기 위해 33번의 종을 치는 것을 말한다. 육중한 석축을 쌓아 만든 경복궁 광화문과는 달리, 석축 없이 소박한 목조 2층 건물을 대문으로 삼은 창덕궁은 모든 면에서 경복궁의 격식보다 한 단계 아래이다. 돈화문은 대표적인 이궁(離宮)의 정문으로, 소박하면서도 위엄이 있는 비례와 형태가 돋보인다.

    돈화문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남향 건물이고, 좌우 협칸을 벽체로 막아 3문형식 이다. 2층 우진각지붕으로 되었다. 공포는 다포계이며, 궁궐의 정문 가운데 정면이 5칸 규모로 된 것은 돈화문이 유일하다. 중앙은 어문으로 왕의 전용 문이고, 좌우문은 당상관이상 높은 관료가 드나들던 문이지만, 3사(三司: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의 언관은 관직은 낮아도 좌우 문을 드나들게 한 특별한 혜택이 있었다. 창덕궁의 서남쪽 모퉁이에 치우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동서로 길게 형성된 궁궐의 지형상의 특성, 그리고 정궁인 경복궁이 창덕궁의 서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궁의 정문과 정전은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고 정문의 동북쪽에 정전인 인정전이 놓인 배치를 하였다.   

 

▲돈화문

 

▲돈화문

 

   본래 넓은 돌계단이 있는 장대석 기단 위에 지어졌으나,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에 거듭된 도로 포장의 결과, 기단부가 아스팔트 밑에 덮여 있던 것을 최근에 발굴하여 계단과 기단 일부가 제 모습을 찾았으나, 앞으로 지나는 율곡로 도로면보다 낮은 모습으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다. 기둥은 전·후·측면에 14개의 평주(平柱)를, 중앙에 4개의 고주(高柱)를 세웠다. 공포는 상·하층이 모두 외2출목, 내3출목인 다포계이고, 외부는 3개의 제공이 중첩하고, 그 위에 구름모양으로 조각된 도리받침이 놓였다. 내부 공포는 행공첨차처럼 끝을 직절하고 바닥을 굴렸으며, 3제공부터는 운공처럼 처리했다. 운공은 둥글둥글한 장식으로 되어 주칸에서는 천장까지 이르렀고 보 아래에서는 보아지가 되었다. 공포의 이러한 특징은 이 건물이 17세기 초에 지어진 것임을 뒷받침해 준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각 마루는 양성을 하고 용두와 7기의 잡상을 배치하고, 용마루 끝에는 취두(鷲頭)를 올렸고, 사래에는 토수(吐首)를 끼웠다. 가운데 주열(柱列) 중앙 세 칸에 각각 2짝씩 문비(門扉)를 달았으며, 그 좌우 양쪽 끝 칸과 측면의 앞 절반은 모두 벽을 쳐서 막아 놓았다. 중앙 세 칸의 문 중에서 가운데 문이 좌우의 문보다 키가 높다. 세 칸의 문 위 상부에는 풍혈과 홍살을 꾸몄으며, 1층 천장은 소란우물반자이다. 2층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은 제일 바깥 칸에 각각 하나씩 설치되었으며, 2층은 누마루를 깔고 4면에 삼태극이 그려진 조그마한 판문(板門)을 돌려서 달았다. 이층 내부에는 좌우로 2개만 고주가 섰고, 가운데는 넓은 공간이 형성되었으며, 천장은 설치하지 않았다. 다른 문루 건물에는 고주를 중앙에 1렬로 배치하였는데, 이 돈화문에는 그 일부를 생략하여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돈화문 편액

 

▲돈화문 편액

 

 

 

<2013.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