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악양루
악양 마을 북쪽 절벽에 있는 정자로, 조선 철종 8년(1857)에 세운 것이라 한다. 악양루는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자 아래로는 남강이 흐르고, 앞으로는 넓은 들판과 법수면의 제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전쟁 이후에 복원하였으며, 1963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기두헌’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청남 오재봉이 쓴 ‘악양루(岳陽樓)’라는 현판만 남아 있다.
중국의 악양루는 호남성의 동정호(洞庭湖)의 동쪽 악주부에 있는 부성 서쪽문 누각으로 동정호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풍광이 아름다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동정호는 중국 최대의 호수로 동서 30~100km, 남북 100lm나 된다. 당 개원년간(713~714)에 지방 장관이었던 장설(張說이 당대의 여러 재사(才士)와 더불어 누상에서 시를 읊고 즐긴 곳으로 유명하다. 웅대한 조망과 누상에 모인 명사들의 모습은 누각 산수도의 좋은 화제가 되기도 한다. 시성 두보는 768년 겨울 그의 나이 57세 때 악양루에 올라 서글픈 마음을 '登岳陽樓(악양루에 올라)'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昔聞洞庭水 예부터 동정호를 들었는데
今上岳陽樓 이제 악양루에 오른다.
吳楚東南坼 오와 초가 동남으로 갈라졌고
乾坤日夜浮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떠 있다.
親朋無一宇 친한 벗은 한 자 소식 없고
老去有孤舟 늙고 병든 몸은 외로운 배에 잇다.
戎馬關山北 관산 북쪽은 아직 전쟁 중이라
憑軒涕泗流 난간에 기대어 눈물 흘린다.
호수가 워낙 넓어 천지간 삼라만상이 동정호에 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잘 표현하였고 늙어 변든 몸이 일엽편주에 의지하여 유랑하면서 자신의 고향인관산이 아직 전쟁 중이라 돌아갈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두보는 몸을 배에 싣고 상강을 로르내리다가 결국 이 시를 읊은 지 2년 뒤인 770년 59세의 나이로 배 안에서 죽었다.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시선 이백은 '與夏十二登岳陽樓(악양루에 올라)에서
樓觀岳陽盡 악양루에서 악양이 다보이네.
川逈洞庭開 시내는 멀고 동정호가 펼쳐지네
雁引愁心去 기러기는 시름을 가져가 날아가고
山銜好月來 산들도 좋고 달도 떠오르네
雲間連下榻 구름 사이에 숙소 정해 머물고
天上接行杯 하늘 위에서 술잔 돌려 마시네
醉後凉風起 취하니 서늘한 바람 불어
吹人舞袖回 휘돌아 춤추는 사람 소매깃을 휘도네
또 송대 범중엄(范仲淹)은 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하였으니
先天下之憂而憂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後天下之樂而樂 천하의 즐거움을 뒤에 즐거워 할 것이니
동정호의 아름다움을
銜遠山 呑長江 먼 산을 머금고 긴 강을 삼켜
浩浩蕩蕩 橫无際涯 넓고 넓어 막힘이 없어 물가에 끝이 없다
고 노래하였다.
▲악양루 석문
▲악양루와 남강
▲악양루
▲악양루
▲악양루
▲악양루
▲악양루
▲악양루 편액
▲악양루
▲악양루
▲악양루
▲기두헌 편액
▲주련
▲주련
▲주련
▲주련
▲주련
▲주련
▲악양루에서 바라본 남강
▲남강
▲함안천과 남강
▲함안천과 남강
<201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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