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서원 - 영주 소수서원 경자바위
소수서원 앞을 흐르는 죽계천변 큰 바위에 선비의 덕목을 나타내는 글자인 敬(경)자를 붉은 글씨로 새긴 바위가 있다. 서원에서 학문을 공부하는 생원, 진사들이 늘 보고 마음에 새긴 글자일 것이다. 주세붕 선생은 백운동서원을 창건한 후 이 바위에 ‘경(敬)’자를 새기고 “오, 회헌 선생을 선사(先師)로 경모하여 서원을 세우고 후학들에게 선사의 학리를 수계(受繼)하고자 하나 세월이 흐르게 되면 건물이 허물어져 없어지더라도 ‘경(敬)’자만은 후세에 길이 전하여 회헌 선생을 선사로 경모하였음을 전하게 되리라”고 하였다 한다.
▲경자바위(敬字巖)
‘경(敬)’은 성리학에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흐트러짐이 없다(主一無適)’는 의미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수양론의 핵심이 되는 선비들의 지침이며 성인이 되어 가는 지름길과 같아 효경(孝經)과 맹자(孟子)에서는 공경의 뜻으로, 논어(論語)에서는 삼가 근신하는 의미로 풀이했다. 또한 敬은 '敬以直內 義以方外'를 '敬'자 한 글자로 나타낸 것으로 '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반듯하게 한다'는 뜻으로 그 글자를 보면서 선비로서의 행동을 바로 잡으로자는 의미이다. '경(敬)자' 위에 흰 글씨로 씌어진 ‘백운동(白雲洞)’이란 글씨는 퇴계 이황선생이 새긴 것으로 전해온다. 그뜻은 당연히 소수서원의 옛 이름인 백운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경자바위(敬字巖)
이 '敬'자 바위는 순흥땅의 아픈 역사와 얽힌 전설이 있다. 세조3년(1457) 10월 단종복위 거사 실패로 이 고을 사람들은 정축지변(丁丑之變)이라는 참화를 당하게 되는데 그때 희생 당한 순흥도호부민들의 시신은 이곳 죽계천에 수장되고 만다. 그 후 밤마다 억울한 넋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므로 당시 풍기군수 주세붕 선생이 원혼을 달래기 위해 ‘경(敬)’자에 붉은 칠을 하고, 위령제를 지낸 후로 울음소리가 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경자바위(敬字巖)
<201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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