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1. 05:22ㆍ◈한국문화순례◈/북방문화권
고구려 가는 길 - 중국 집안 우산고분군 각저총
씨름무덤(角抵塚, YM0457)은 대형 봉토석실벽화무덤(封土石室壁畵墓)으로 규모가 15×13×5m에 달한다. 우산무덤떼 동쪽에 있고 일찍이 도굴당했다. 널방은 정사각형이며, 직사각형인 앞방이 있고, 그 앞을 널길[羨道]이 연결하고 있다. 앞뒤로는 좁고 좌우로 긴 직사각형 앞방 천장의 좁은 부분이 궁륭형(아치형)으로 되어 있어 마치 널방 앞을 좌우로 터널을 뚫어 놓은 것 같다. 널방 천장은 모줄임천장으로 되어 있다. 앞방에 들어가면 왼쪽과 오른쪽 벽에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그려져 있고, 앞쪽 벽에는 눈동자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사나운 개가 그려져 있다. 널방의 동쪽 벽에는 이 이름이 붙여지게 된 씨름그림이 나무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고, 북쪽 벽에는 묻힌 사람의 생전의 실내모습을 연출한 듯 지붕과 커튼을 친 집안에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서쪽 벽에는 소가 끄는 수레와 안장을 얹은 말이 그려져 있으며, 천장은 화려한 불꽃문양과 인동당초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무늬 사이로 삼족오(三足烏)가 있는 해[日象]와 두꺼비가 있는 달[月象]이 있다. 벽의 네 모서리에는 두 팔을 치켜들고 천장을 떠받치는 형상의 역사상(力士像)을 배치하였다.
▲우산
▲각저총(뒤)
씨름도는 이 무덤을 대표하는 벽화이다. 나무 아래에서 웃통을 벗어부친 두 역사(力士)가 서로의 허리춤을 휘어잡고 힘 대결을 하고 있다. 다부진 몸매. 꽉 다문 입술.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선과 장딴지가 팽팽한 두 씨름꾼이 거칠게 힘겨루기를 하던 중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모습이다. 마지막 힘을 쓰기 위해 상대방의 빈틈을 찾는 순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곁에서 심판을 보던 정장 차림의 노인은(비록 얼굴을 상실했지만) 언제 터질 지 모를 흥분된 순간을 기다리느라 지팡이를 쥐고 있는 손에 땀이 맺혔다. 심판관의 머리 위로는 하늘을 상징하는 주술적인 문양이 그려져 있다.
▲씨름도
▲씨름도(부분)
윤곽선 없이 채색으로만 그려진 나무와, 윤곽선이 뚜렷이 표현된 근육질의 몸매가 대조를 이룬다. 나무 가지 사이로 축 쳐진 검은 새들이 걸려 있다. 반원을 그으며 나무가 만들어놓은 공간 속에서 상대편 어깨를 밀며 씨름중인 두사람은 모두 검은색 팬티를 걸치고 있다. 팬티 색깔이나 샅바 색깔이 다른 요즘 씨름하고는 다른 풍경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사람이 서역사람이다. 옆으로 쭉 찢어진 눈과 갈고리처럼 휘어진 매부리코의 주인공이 바로 서역인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속에서 외래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용총에서는 설법하고 있는 스님이 외국인이고, 고구려 벽화고분의 천정이 말각조정이다. 네 귀퉁이에 잘 다듬은 돌을 쌓아올라가는 말각조정의 건축술은 중앙아시아적인 요소이다.
▲나무수레도
▲생활도
고분속에서 발견되는 이런 흔적들은 6세기경에 이미 고구려가 국제적인 도시였음을 말해준다. 더구나 씨름의 종주국이라 말 할 수 있는 고구려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참가하려면 상당한 기간동안 씨름선수로서 기량을 연마했을 것이다. 그것은 씨름이 고구려 국내행사가 아니라 서역까지도 알려질 정도로 국제행사였다는 뜻이다. 오늘날 일본의 쓰모가 외국선수들이 참가할 정도로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잡은 것과 같은 의미이다. 씨름하는 장면을 무덤의 현실 동쪽벽에 그려 넣은 것은 그만큼 씨름이 당시 풍속을 대표하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씨름그림은 그 연원이 고구려 고분벽화까지 가 닿아 있다.
▲생활도(부분, 모사도)
<201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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