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12. 06:02ㆍ◈한국문화순례◈/북방문화권
고구려 가는 길 - 중국 집안 환도산성 음마지
음마지(飮馬池)는 고구려 병사들이 말에게 물을 먹이던 곳이다. 음마만(飮馬灣), 또는 연화지(蓮花池), 양어지(養魚池)라고도 부른다. 넓이가 약 5~60㎡ 되는 움푹한 지대이다. 현재 흙이 많이 쌓여있는 데다가 풀까지 자라고 있어 안내자의 설명 없이는 못인지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옛적에는 약 80㎡의 면적에 화강암으로 된 석벽까지 갖춘 못이었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겨울에는 물이 얼지 않아 성 안의 사람과 말의 식수를 충분히 충당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연꽃이 피어있기도 하고 잉어가 길러지기도 해서 그와 관련된 명칭이 생겨나기도 했으며, 고구려 역사에 커다란 몫을 담당했던 설화가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한나라 요동태수가 100만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했을 때에도 적을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한다.
▲음마지
○十一年, 秋七月, <漢><遼東>太守將兵來伐. 王會群臣, 問戰守之計. 右輔<松屋句>曰: “臣聞恃德者昌, 恃力者亡. 今中國荒儉, 盜賊蜂起, 而兵出無名, 此非君臣定策, 必是邊將規利, 擅侵吾邦. 逆天違人, 師必無功, 憑險出奇, 破之必矣.” 左輔<乙豆智>曰: “小敵之强, 大敵之禽也. 臣度大王之兵, 孰與<漢>兵之多, 可以謀伐, 不可力勝.” 王曰: “謀伐若何?” 對曰: “今<漢>兵遠鬪, 其鋒不可當也. 大王閉城自固, 待其師老, 出而擊之, 可也.” 王然之, 入<尉那巖>城, 固守數旬, <漢>兵圍不解. 王以力盡兵疲, 謂<豆智>曰: “勢不能守, 爲之奈何?” <豆智>曰: “<漢>人謂我巖石之地, 無水泉, 是以長圍, 以待吾人之困. 宜取池中鯉魚, 包以氷{水} 草, 兼旨酒若干, 致犒漢軍.” 王從之, 貽書曰: “寡人愚昧, 獲罪於上國, 致令將軍帥百萬之軍, 暴露弊境. 無以將厚意, 輒用薄物, 致供於左右.” 於是, <漢>將謂城內有水, 不可猝拔. 乃報曰: “我皇帝不以臣駑, 下令出師, 問大王之罪. 及境踰旬, 未得要領, 今聞來旨, 言順且恭, 敢不藉口以報皇帝.” 遂引退.
▲음마지
11년 가을 7월, 한의 요동 태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해왔다. 왕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 놓고, 공격과 방어에 대한 계책을 물었다. 우보 송옥구가 말했다. “제가 듣건대 덕을 믿는 자는 창성하고, 힘을 믿는 자는 망한다 하였습니다. 지금 중국에는 흉년이 들어 도적들이 봉기하고 있는데, 이유없이 군사를 일으키니, 이는 조정에서 결정한 사항이 아니고, 필시 변방의 장수가 사욕을 채울 목적으로 우리 나라를 무단 침범한 것입니다. 이는 하늘의 이치에 위배되고,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이므로, 그들의 군사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니, 우리가 험준한 지형에 의지하였다가 불시에 기습을 한다면, 적을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좌보 을두지가 말했다. “수가 적은 편이 비록 강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수가 많은 편에게 잡히게 됩니다. 제가 대왕의 군사와 한 나라 군사 중에 어느 편이 많은가를 생각하여 보았는데, 계략으로 그들을 공격할 수 있을지언정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왕이 물었다. “계략으로 공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을두지가 대답했다. “지금 한 나라 군사가 멀리 와서 싸우니, 그들의 서슬을 당해 낼 수 없습니다. 대왕은 성문을 닫고 우리의 군사를 튼튼히 하여, 적군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린 후에 나아가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이 이 의견을 옳게 여기고 위나암성에 들어가서 수십일 동안 굳게 수비하였으나 한 나라 군사는 포위를 풀지 않았다.
▲음마지
아군의 힘이 다하고 군사가 피로해졌으므로 두지에게 물었다. “더 이상 수비할 수 없는 형세가 되었으니 어떻게 할까?” 두지가 대답하였다. “그들은, 우리가 암석 지대에 처하고 있으므로 물있는 샘이 없다고 생각하여, 오랫동안 포위하여 우리가 곤궁에 처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못의 잉어를 잡아서 수초로 싸고, 또한 약간의 맛 좋은 술을 준비하여 한 나라 군사에게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이 두지의 말에 따라 편지를 보내어 말했다. “내가 우매하여 상국에 죄를 지어, 장군으로 하여금 백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우리의 황폐한 경내에서 노숙 생활을 하게 하였다. 장군의 후의에 보답할 길이 없어, 이에 보잘 것 없는 물건이나마 장군의 막하에 보낸다.”
이 때 한 나라 장수가, 성 안에 물이 있으니 빠른 시간 내에 점령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들은 곧 회답하여 말했다. “우리 황제가 나의 어리석음을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출사의 명령을 내려 대왕의 죄과를 묻게 하였다. 이에 따라 고구려 국경에 온지 열흘이 넘도록 행동할 바를 몰랐는데, 이제 보내 온 편지를 보니 말이 순리에 맞고 공손하니, 내가 황제에게 이 말대로 보고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는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물러갔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음마지
<201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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