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부처님 나라 가는 길 - 경주 낭산 전신문왕릉

蔥叟 2011. 6. 17. 05:44

부처님 나라 가는 길 - 경주 낭산 전신문왕릉

 

   낭산 남쪽의 사천왕사터에서 동남쪽이며 망덕사 동쪽에 신문왕릉으로 전하는 능이 있다. 외형은 원형봉토분이며 내부구조는 횡혈식석실분이다. 왕릉의 봉분자락에는 이전 시기와는 달리 벽돌처럼 잘 다듬은 치석(治石)을 사용하여 지대석 위에 5단으로 호석을 쌓은 뒤 그 위에는 신라 왕릉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개석(蓋石)인 갑석(甲石)을 올렸다. 호석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게 130~145cm 정도로 쌓았다. 받침석은 괴석으로 두른 무열왕릉과는 달리 정밀하게 가공한 석재를 사용하였다. 받침석은 너비 54~60cm, 두께 47~60cm, 앞면길이 143~163cm 내외의 사다리꼴로 44개를 다듬어  127~155cm 내외의 간격으로 호석에 기대놓았다. 받침석은 호석의 붕괴를 막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장식의 효과까지 더하였다. 신라는 삼국통일 후부터 석재를 가공해서 사용하는 문화가 등장한다. 안압지, 사천왕사, 감은사 등에서 시작된 이 문화가 왕릉에서는 전신문왕릉에 최초로 적용된 사례이다. 

 

   정남쪽에 놓인 받침석의 윗부분에는 '門'字를 새겨놓아 이곳이 현실로 들어가는 연도 입구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를 통하여 전신문왕릉은 현실에 추가장을 할 수 있는 횡혈식석실분임이 명확하다. 왕릉의 동쪽에는 상석이 놓여 있는데 장대석을 2단으로 쌓아 축조한 것인데 앞부분에 계단이 놓여있는 것을 제외하면 무열왕릉의 상석과 같은 양식이다. 다만 무열왕릉의 것은 1단으로 되어 있다. 이후의 상석은 모두 탁자식으로 만들어진다. 상석이 동족에 있음은 피장자의 시신이 머리를 동쪽으로 두고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라 장법의 원형이었다. 그런데 문이 남족에 있음은 정면이 남족으로 서서히 바뀌어가는 과도기를 보여주고 있어 서서히 중국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혼유석은 영혼이 나와서 노는 자리이고 상석은 제수품을 진설하는 자리이다. 조선시대에는 무덤 바로 앞에 혼유석을 설치하고 상석은 정자각이 상석의 역할을 하였다. 만약 전신문왕릉의 구조물이 상석이라면 계단이 필요없을 것이다. 따라서 계단은 왕의 영혼이 올라가는 길이라면 상석과 혼유석의 기능을 동시에 갖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전기의 기록에는 인 경상도속찬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모두 신문왕의 아들인 효소왕릉이 '(在府東芬南里)'고 하여 전신문왕릉이 효소왕릉임을 말하고 있었다. 또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망덕사 동쪽에 장사지냈다(葬于望德寺東)', '(효소왕)능이 망덕사 동쪽에 있다(陵在望德寺東)'고 기록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뿐만아니라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점필재 김종직의 시 '과효소왕릉(過孝昭王陵)'에는 효소왕릉의 상석에 대한 내용이 있다. 효소왕릉에 상석이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전 효소왕릉'에는 이런 상석이 없다. 전 신문왕릉의 상석 계단으로 올라가서 그 위에 앉아 새참을 먹는 시골 농부의 모습이다.

 

 

만두 같은 한 기 흙무덤 풀 나무 황량한데

마을 사람들 아직도 효소왕 무덤이라 기억한다네.

구천(九泉)의 오리와 기러기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직 김매던 농부만이 무덤 앞 상석(床石)에서 밥을 먹고 있네.

 

<김종직, 「過孝昭王陵」(권혁화 역)>

 

 

十二年, 秋七月, 王薨. 諡曰<神文>, 葬<狼山>東.가을 7월,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신문이라 하고 낭산 동쪽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문왕전>

 

 

   조선 영조 6년(1730)에 경주김씨 문중에서 당시에 경주지역에서 불국사로 가는 방향을 동쪽으로 간주하였던 관례에 따라 이곳을 낭산의 동쪽에 있다는 신문왕릉으로 지정하고 효소왕릉은 도지동의 성덕왕릉 입구 고분으로 지정해버렸다. 도지동은 결코 분남리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전신문왕릉

 

 

▲전신문왕릉

 

 

▲전신문왕릉

 

 

▲전신문왕릉

 

 

▲전신문왕릉

 

 

▲전신문왕릉

 

 

▲전신문왕릉

 

 

▲전신문왕릉

 

 

▲전신문왕릉

 

 

▲호석

 

 

▲상석

 

 

 

<2011.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