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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모례정(毛禮井)

蔥叟 2010. 8. 24. 06:25

구미 모례정(毛禮井)

      

   모례정 또는 모례가정(毛禮家井), 모례장자샘 등으로 불려지는 이 우물과 도리사는 신라 불교의 전파를 알려주는 유적으로 신라 불교의 성지이다. 모례정은 도개리 마을 중앙에 위치하는데, 신라 최초의 불교 신자인 모례(毛禮)의 집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례는 고구려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왔으나 탄압이 심해지자 자기 집에 굴을 파고 숨겨주었으며, 후에 아도가 왔을 때도 자기 집에 5년동안 머슴살이하면서 머물게 했다고 전한다.

   

   아도화상은 일곱 살 때 여기 모례장자의 집에 와 머슴을 살면서 양 천마리와 소 천 마리를 길러 모례를 크게 놀라게 했다. 이렇게 5년간 일해주고 열두살이 되자 아도가 이곳을 떠나면서 그동안의 새경을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 모례가 섭섭하고 아쉬워서 가는 곳을 물었으나 장소는 말하지 않고 "얼마 뒤에 당신의 집으로 칡순이 뻗어올 것이니 그 칡넝쿨을 따라 오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떠났다. 그 뒤 한 겨울 어느 날 칡순이 모례의 집 문턱을 넘어왔고 모례가 그 줄기를 따라가니 냉산 자락에 이르렀고 그곳에 아도가 있었다.

 

   아도가 모례의 인색한 성품을 잘 알고 있어서 큰 시주를 원하지 않는 듯 두말들이 자그만 망태기를 만들어 모례에게 내놓으며 "절을 지을 것이니 시주 좀 해주시오" 하자 모례를 쾌히 응낙했다. 이 망태기는 그러나 아주 이상한 물건이었다. 두 말은 어림도 없고 열섬, 백섬을 부어도 처음 한 말을 부었을 때의 분량 그대로였다. 모례는 끝내 약속대로 망태기를 가득 채우지 못한 채 천 섬을 시주하였고, 아도는 이것으로 한겨울인데도 복숭아꽃, 오얏꽃이 만발한 냉산 기슭에 절을 이룩하니 이것이 신라 최초의 가람 도리사였다고 한다. 

 

   도리사가 세워진 뒤 해가 갈수록 절은 번창하고 승려는 날이 갈수록 늘어 절에서는 가끔 마을로 내려와 시주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두말들이 망태기'에 혼이 난 모례의 집에서는 시주를 하려하지 않았다. 하루는 청하는 시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탁발하는 스님을 붙잡고 "더욱더 부자 되는 길은 없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집터가 배 모양이니 돛을 세우면 좋겠지요. 부자 될 겁니다." 하고 말했다. 이 말을 좇아 곧 비석 셋을 세우니 이때부터 오히려 차츰 가세가 기울더니 오래지 않아 모례의 집은 망해버렸다고 한다. 지금 마을 어귀에 있는 입석이 그 비석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우물은 직사각형의 석재를 사용하여 큰 독 모양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다. 우물의 깊이는 3m이고 둘레는 단면이 원형이며 종단면은 가운데의 배가 부르고 상하가 좁은 형태이다. 밑바닥을 두꺼운 나무판자로 깔아 만든 것이 특징이며 나무판자를 아직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

 

▲모례정

  

▲모례정

 

▲모례정

 

▲모례정

  

▲모례정 내부

  

▲모례정 내부

 

 

 

<2010.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