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경주 율동 마애열반상

蔥叟 2010. 6. 23. 05:41

경주 율동 마애열반상

     

   율동 마애열반상은 1999년 2월 4일(목) 하오 3시경 경주 율동 서당골(일명 방목골)에서 발견되었다. 불상이 조각된 바위의 주변은 대나무 숲이 계곡의 양쪽에 있고 동쪽으로 흐르는 계곡에 면해서 남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이 바위의 북편에서 동편을 지나는 도랑이 있는데 동·남·북쪽면은 지상에 드러나 있고 서쪽면은 산의 경사면에 뿌리를 박고 있다. 바위 전체의 크기는 가로 약 350cm, 세로는 약 450cm로 추정(현재 매몰되어 있으므로 정확하지 않음)된다.

 

마애열반상

 

마애열반상

 

   북쪽면에는 암면 중간쯤에 ㄱ자 모양으로 바위가 파여져 천연의 암굴을 이루고 있다. 이 굴의 형태는 안쪽으로 경사지게 되어 있어서 서서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좁은 편이다. 이 암굴 안에는 계곡 상류에서 흘러 내려온 토사가 북쪽면의 동쪽 끝단에 있는 명문부분(N 54°E) 보다 1.5m가량 높이로 쌓여 있다. 이 곳 자연암굴 안의 오른쪽 바위면(전체 가로 370cm, 세로 270cm N 34°W에 길이 260cm정도에 크랙이 있다)은 평탄한데 이제까지는 아무런 조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토사 상단 높이에서 인공선이 발견되어 마애상을 찾아내게 되었다.

 

   마애열반상의 크기는 불신 길이 180cm, 불두 길이 41cm, 얼굴 폭 26cm 정도이다. 이 상은 오른쪽을 바닥으로 하고 불두를 부조로 조각하였으며 목에서부터 몸체까지는 조각하지 않았다. 다만 왼손(길이 20cm, 폭 13cm, 손가락 길이 12cm, 폭 3cm)을 머리와 발의 중간보다 발 쪽으로 치우쳐 배에 대고 있는 듯한 손이 하체쪽으로 경사지게 선각되어 있다. 이 부분을 좀더 자세히 관찰하면 엄지손가락은 표현하지 않은 것 같이 둘째손가락에 붙여서 새기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가지런하게 모아 자연스럽고 예쁘게 표현하였는데 가장자리 선은 굵게, 손가락 사이 선은 가늘게 조각되었다. 오른손은 아마 옆으로 누워있는 여래의 몸체 아래쪽에 표현되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다.

  

마애열반상

 

마애열반상

 

   또 발(길이 30cm, 폭 15cm 전부 굵은 선으로 암각화를 그리듯 긋기기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발가락을 그리는 선이 위로 벗어나 있다.)을 조각하였는데 완전한 모양이 아니고 오른발은 발끝부분을 엄지발가락으로 보이는 하나를 좁은 삼각형으로 선각하고, 발 뒷꿈치는 완전히 선각으로 윤곽선을 표현하지 않고 일부만 선각으로 구획하여 발뒤꿈치라는 것과 그 크기만 대략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왼발은 오른발에 붙여서 조각하였는데 발끝부분은 선이 있지만 발 뒷꿈치는 따로 조각이 없으며, 엄지발가락은 오른발과 같은 방법으로 조각하였는데 양발 전체가 얼핏보면 샌달을 신은 모습과 흡사하다.

 

   불두는 머리(높이 5cm, 폭 14cm) 위에 육계(높이 10cm, 폭 11cm)가 두툼하고 뚜렷하게 조각되어있으며, 눈(폭 10cm, 높이 5cm로 윗눈썹 3.5cm, 아랫눈썹 1.5cm)은 눈썹을 둥글게 표현하여 코(길이 12cm, 폭 6cm)와 연결되었는데 그 모습이 자연스레 도툼하고 둥근편이다. 눈까풀은 가로 일직선으로 선각되어 있어서 대다수의 불상의 눈 표현이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인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코는 큼직하고 둥글게 조각하고, 입은 아래위를 반달모양으로 표현하였는데 윗입술(길이 9cm, 두께 2cm)이 아랫입술(길이 6cm, 두께 2cm)을 덮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 귀는 비교적 뚜렷하게 눈부분에서 시작하여 목부분까지 내려오지 않고 아랫입술까지만 내려온 듯하여 짧게 달라붙은 둣이 좁게(너비 2.5cm) 표현하였고 오른쪽은 어디서 끝나는지 확실하지 않는데 전체적으로 얼굴에 짝 달라붙은 것처럼 좁게(너비 2cm) 표현하였다.

 

▲불두

 

▲불두

 

   불두의 동쪽면 튀어나온 바위에 명문이 조각되었다. 미 명문에 대한 기왕의 조사내용은 전문 5행에 23자가 판독되고 있으나 가장 오른족의 한 글자(年)는 다른 글자를 새기고 빠진 것을 보충한 것으로 보아 4행으로 구성된 문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명문의 판독문과 해석문은 다음과 같다. 

 

戊戌年二月十三日治成▲▲

法泰法師若▲

   願起不小和 第一日去大

王大

 

무술년 2월 3일에 (불상)을 조성하였는데……, 법태법사가 …… 하였고”, 중간에 어떤 관련 내용이 있고 끝 부분에 “무슨무슨 대왕과 신하들이 ……

 

▲손

 

▲발

 

▲불두

 

   열반상의 명문 명문에는 연호가 없고, 또한 그 전체 내용이 해석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명문 중에 「大ホ」의 존재와 간지로 시작되는 금석문의 유행시기에 착안하여 이 불상의 조성연대를 좁게 보면 698년 또는 758년에 조성된 것이고, 넓게 보아도 638년, 698년, 758년, 818년 등 네 가지 연대 중 한 해에 귀속될 것으로 본다.

 

▲명문

 

 

 

<2010.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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