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인양사터 탑금당치성문기비
이름도 생소한 탑금당치성문기비(塔金堂治城文記碑)는 9세기 초 통일신라시대의 절의 건립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는 비석이다. 비에 새겨진 글에는 인양사(仁陽寺) 등 여러 사찰의 범종, 탑, 불상, 금당, 요사 등의 조성연대와 이에 소요되었던 양식 등이 담겨있다. 인양사 종을 주조한 771년에서 이 비석이 세워진 810년까지의 40년 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탑금당치성문기비각
▲탑금당치성문기비
비석 뒷면에는 승려의 상이 양각되어 있는데, 이 비석에 담긴 일과 관련된 고승을 기려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조각된 상은 어린 얼굴에 자비로운 모습인데, 인체를 모방한 부드러운 선이 8,9세기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비석 위에는 이례적으로 지붕과 같은 머릿돌이 얹혀있는데, 크기가 비신에 비해 지나치게 커 원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비의 높이는 150cm, 폭은 45cm이다.
이 비는 창녕읍내(昌寧邑內)에 있는 것으로 앞면에는 승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그 뒷면에는 인양사(仁陽寺)의 탑(塔)과 금당(金堂)을 완성한 것을 기념하여 그간의 과정을 적은 치성문(治成文)이 적혀 있으며, 양 측면에는 각 2행씩 승려들의 수행의 여러가지 공덕 내용과 그것이 모두 보리(菩提)를 얻기 위한 것임을 적고 있다. 내용상으로 보아 치성문 우측면의 내용이 좌측면의 내용보다 앞서는 것 같지만 우측면은 결락이 심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다.
▲탑금당치성문기비
▲승려상
종래에는 이 치성문의 판독이 부정확하여 제1행에 나오는 ‘□塔 金堂治成文記之’의 부분이 ‘阿飡金□□願文記之’로 읽혀졌는데(『朝鮮金石總覽』), 그 결과 사찰에 많은 양의 곡식을 시주한 인물의 공덕비로 생각되어 사원 경제에 관한 자료로서 이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판독의 결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 비의 앞면에 있는 승려의 상과 관련하여 측면의 기록은 이 승려의 공을 칭송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 이 승려가 인양사 금당의 건립에 공이 큰 승려라고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좌측면의 기록에 대한 판독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뒷면의 치성문에서는 혜공왕(惠恭王) 7년(771)에서 헌덕왕(憲德王) 2년(810)에 이르는 근 40년간에 걸친 인양사의 탑과 금당 등을 건립, 보수하는 데 필요한 비용의 조달이 구체적으로 적혀있어서 당시의 사원 운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측면에는 여러 불교전설 혹은 승려들의 이야기에 나오는 고행의 여러 모습을 적고 있고, 특히 초기 중국 선종(禪宗)에 관한 내용도 있어 당시 신라 불교의 수행관과 신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승려상
▲비문
탑금당치성문기비는 8세기 말부터 9세기 초반의 서라벌과 비사벌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당시에 교통의 요충지에 역(驛)을 두어 관리가 기숙했다는 사실과 그 역의 이름이 양열(羊熱)과 유천(楡川)이었다는 사실이다. 또 서울(경주)에 기록에 전하지 않는 보장사(寶藏寺)라는 절이 있었고, 비사벌에 인양사(仁陽寺)를 비롯하여 원지사(苑池寺), 상락사(常樂寺), 대곡사(大谷寺)등의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문에 의하면 대곡사의 석탑이 810년에 완성되었다고 하였는데 절의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큰 계곡에 자리잡고 있었던 절로 보인다. 창녕의 지세로 보면 화왕산에서 서족으로 흐르는 큰 계곡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렇다면 여기에 해당하는 석탑은 바로 앞에서 보았던 술정리 동삼층석탑이 바로 대곡사 석탑이었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양식상으로 8세기 후반의 석탑으로 편년되는 이 석탑이 9세기 초반인 810년에 완성되었다는 기록과의 차이를 극복하느냐의 문제가 대두된다. 다만 이 탑을 9세기 탑으로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근거는 기단부를 4개의 석재로 조립하였는데 이는 9세기 전반 석탑의 특징이라는 주장도 있다.
▲비문
▲비문
어쨌든 탑금당치성문기비는 탑과 금당을 수리한 후 지은 비문이나 주변에 유물이나 절터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곳이 사역의 중심부인지 외곽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또한 비의 모습도 비신 위에 지붕돌을 얹은 유일한 작품이며 승려를 조각의 대상으로 삼은 점으로 보아 9세기의 작품으로 보기도 하나 비문에 나오는 8세기의 '순표(順表)' 스님일 가능성이 유력하다. 스님상의 목에 삼도가 조각된 점도 독특하다고 하겠다.
<2010.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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