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마을 산책 - 경주 근암고택

2009. 10. 28. 08:19◈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양동마을 산책 - 경주 근암고택

  

   이 가옥은 조선 정조 4년(1780) 경에 이정수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한다. 그의 4대손인 이희구가 홍릉참봉을 지냈으므로 참봉댁이라고도 불리운다. 이희구의 호를 따라 근암고택이라고 부른다. 서남향을 하였고 사랑마당에서 앞을 바라보면 시야가 멀리 마을 입구까지 이어진다. 전체 모양은 일반적인 '口' 자 또는 앞이 튼 '口'자 모양을 따르지 않고, 대문채 뒷편으로 'ㄱ'자 모양 안채가, 그 오른쪽에 거리를 두고 사랑채가 놓여있다. 이렇게 안채, 사랑채, 대문간채 를 떼어서 배치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각 건물의 규모나 안채, 사랑채에 둥근기둥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 점은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안채의 북쪽에 사당을 두었는데, 앞면은 3칸이고 옆면은 1칸으로 홑처마 맞배집이다. 

 

▲근암고택 진입로

 

▲근암고택

 

   ㄱ자 안채를 담장으로 둘러싸 안마당을 만들고 사랑채는 남쪽에 독립해 있지만 원래는 사랑채가 안채에 직각으로 놓여 안마당을 감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에 원래의 사랑채가 소멸된 뒤, 현재와 같이 어색한 팔작지붕의 사랑채를 신축했다. 결과적으로 안채, 사랑채, 고간채, 대문채 등이 모두 분리되고, 이들을 담장으로 연결한 변형된 형태가 됐다.

 

   사랑채 뒤로 매우 넓은 후원이 조성돼 있다. 현재는 관리가 안되서 약간 황량한 느낌을 주지만, 자연 경사지를 그대로 이용해서 계획적으로 나무를 심은 흔적들이 잘 남아 있다. 특히 이 후원은 마을의 전경과 자연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로 동요에나 나올 명실상부한 뒷동산이다. 또한 이 동산의 완만한 산책로 끝에는 사당이 위치하여 산책과 의례를 일체화하고 있다. 양동의 저택들은 경사지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고, 건축가들은 건물이 앉혀질 최소의 땅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사지형을 그대로 살려 정원이나 동산을 만드는 솜씨를 발휘했다. 근암고택의 뒷동산은 그 가운데서도 백미에 꼽힌다.

 

▲근암고택 사랑채

 

▲근암고택 대문채

  

   사랑채는 벽으로 구획된 2칸 사랑방을 두고 그 좌측에 1칸의 사랑대청으로 되어있다. 사랑방 전면은 퇴칸 형식이며, 방의 후면은 각각 벽장이 딸려있다. 서랑채의 기단과 가구형식은 비슷하여, 지붕은 팔작지붕형식으로 처리하였다.

 

   안채는 ㄱ자로 꺾인 부분에 부엌을 위치시키고 그 좌측에 안방 - 안대청 - 건넌방 - 고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부엌 앞쪽으로 2개의 온돌방을 접속시켜 돌출시켰다. 안방에서 건넌방에 이르는 정면은 퇴칸형식이며, 안방과 안대청 뒤쪽으로 툇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안방과 익랑 끝방의 뒷벽에 벽장을 두었다. 안대청 상부 대들보 위에는 호리병박 모양의 판대공을 세웠으며, 고방 상부는 가적지붕형식이다. 막돌허튼층쌓기기단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운 장혀수장집의 3량가구로 홑처마에 맞배지붕형식이다.

 

▲근암고택 안채

 

▲근암고택 안채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어칸과 양 퇴칸에 각기 두짝과 외짝 문을 달고 나머지는 벽으로 막았다. 막돌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정면에만 원주를 세우고 이익공계로 꾸민 3량 가구로 홑처마에 맞배지붕형식이다. 행랑채는 중앙에 대문이 위치하며 그 좌우로 각각 광과 문간방으로 이루어졌고, 행랑채와 부속채는 3량 가구로 장혀수장 홑처마 맞배지붕형식이다.

 

   ㄱ자 안채를 담장으로 둘러싸 안마당을 만들고 사랑채는 남쪽에 독립해 있지만 원래는 사랑채가 안채에 직각으로 놓여 안마당을 감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에 원래의 사랑채가 소멸된 뒤, 현재와 같이 어색한 팔작지붕의 사랑채를 신축했다. 결과적으로 안채, 사랑채, 고간채, 대문채 등이 모두 분리되고, 이들을 담장으로 연결한 변형된 형태가 됐다.

 

▲근암고택 안채

 

   사랑채 뒤로 매우 넓은 후원이 조성돼 있다. 현재는 관리가 안되서 약간 황량한 느낌을 주지만, 자연 경사지를 그대로 이용해서 계획적으로 나무를 심은 흔적들이 잘 남아 있다. 특히 이 후원은 마을의 전경과 자연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로 동요에나 나올 명실상부한 뒷동산이다. 또한 이 동산의 완만한 산책로 끝에는 사당이 위치하여 산책과 의례를 일체화하고 있다. 양동의 저택들은 경사지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고, 건축가들은 건물이 앉혀질 최소의 땅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사지형을 그대로 살려 정원이나 동산을 만드는 솜씨를 발휘했다. 근암고택의 뒷동산은 그 가운데서도 백미에 꼽힌다. 근암고택 일대는 지대가 높아 전망이 좋기 때문에 한 때 위세 당당했던 양반 계층의 후손들이 사는 규모가 크고 건축적으로 특성이 있는 집들이 연이어 있다. 근암고택, 상춘헌고택, 사호당고택, 이형동가옥, 서백당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2009.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