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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흥평시 김일제묘(金日磾墓)

蔥叟 2009. 9. 22. 08:26

중국 흥평시 김일제묘(日磾)

  

   김일제묘는 곽거병묘의 동쪽 과원 안에 자리잡고 있다. 역시 한무제 무릉의 배장묘 가운데 하나이다.  김일제(金日磾, 기원전 134년 ~ 기원전 86년)는 한나라의 관료로 흉노족 출신이다. 자(字)는 옹숙(翁叔)으로, 본래 흉노족 휴도왕(休屠王)의 태자였으나 부왕이 한 무제(漢武帝)와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중국으로 끌려왔다. 그뒤 한 무제로부터 김씨(金氏) 성을 하사 받았다. 중국 김씨들의 시조이며 신라문무왕의 비석에 김일제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한편 김수로는 그의 아우 김윤(金胤)의 후손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일제묘(金日磾墓)

 

▲김일제묘(金日磾墓)

 

   흉노족의 왕 휴도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곽거병(霍去病)의 흉노 정벌 때, 부왕 휴도왕 혼은 전사하고 흉노군 3만명이 살육당한 뒤 흉노 귀족 122명은 한나라 뤄양에 포로로 끌려갔다.  이때 일제와 아우 윤, 어머니 알씨(閼氏) 등은 곽거병의 포로로 붙잡혔다. 말 기르는 노예가 된 김일제는 우연히 무제의 눈에 띄어 노예에서 해방되고 마감(馬監)으로 임명되었으며, 이어 시중(侍中), 부마도위(附馬都衛),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올랐다. 키가 8척 2촌, 용모는 위엄이 있었다. 무제의 두터운 신임이 있었음에도 신중하여 과실이 없었고, 망하라(莽何羅) 등의 무제 암살 시도를 막아 그 공으로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이어 투후(秺侯)에 봉해졌다. 휴도왕이 금인(金人)을 가지고 천주(天主)에 제사지냈던 일에서 비롯하여 김씨(金氏)를 성으로 하사받았다. 그 뒤 한무제가 죽으면서 김일제와 곽광 등을 함께 어린 아들 유불릉의 후견인으로 지목하여 소제를 보필하기도 했다. 사후 한 무제의 묘 옆에 곽거병과 함께 배장되었다.  

 

▲김일제묘(金日磾墓)

 

▲김일제묘(金日磾墓)

 

   중국산둥성 하택시 성무현 옥화묘촌 입구에는 이곳이 김일제가 영지로 봉작받은 투 지방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존재하고 있다. 투후 유적지에는 김일제를 기리던 사당인 투후사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 218년 1월 조조를 토벌하려던 위황의 동지 중 장수 김위(金褘, 자는 德偉)는 김일제의 후손이라 한다.

 

 

 

▲김일제묘(金日磾墓)

 

▲김일제묘(金日磾墓)

 

   신라 왕족인 김씨의 조상을 흉노 출신인 김일제(기원전 134년∼기원전 86년)라고 기록한 재당(在唐) 신라인의 묘지명도 있다. 이묘지명은 1954년 중국 산시성 시안시에서 출토돼 시안시 비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864년 당에서 사망한 신라 여성의 묘지명인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묘지명에 의하면 김일제는 흉노 휴도왕의 아들로 서한(西漢·전한)에 투항한 뒤 황제의 고문인 시중(侍中)에 올랐으며 제후인 투정후(亭侯)가 됐다. 이 묘지명은 또 신라 김씨의 시조가 중국 고대 전설 속 제왕인 소호씨김천(少昊氏金天)이라고 적었다. 

 

▲김일제묘비(金日磾墓碑)

 

▲김일제묘비(金日磾墓碑)

  

   또한 경주 사천왕사터에 서 있던 문무왕의 비문에는 문무왕의 조상, 즉 신라 김씨의 가계와 관련해서 수수께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신라 김씨의 조상을 흉노족으로 보았거나, 적어도 그 뿌리를 흉노에서 찾고자 했다는 암시가 등장한다. 예컨대 비문의 상단부에는 문무왕의 15대조를 '성한왕(星漢王)'이라고 밝히고 "투후(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 …했다(傳七葉)"는 구절이 있다. 제천지윤(祭天之胤)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사람의 후손"을 말한다. 이는 본래 휴도왕이 금인(金人)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祭天)했으며, 한 무제로부터 김(金)씨 성을 받았다는  <한서 열전 김일제전>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서 '제천지윤 전칠엽'은 신라 문무왕 선대의 7대 전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비문 자체가 깨지고 멸실된 부분이 워낙 많아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이와 관련, 당대의 시대 상황, 즉 당나라와 건곤일척의 싸움을 끝낸 문무왕 입장에서 신라의 조상이 중국, 즉 당나라가 아님을 널리 알린 것일 수 있다. 

 

 

 

<2009.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