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석장리 출토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국립경주박물관>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1934년 경주군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터 언덕에서 발견돼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신라의 금석문 자료이다. 국사교과서에서 화랑들의 ‘임신년 굳은 맹세’쯤으로 배웠지만 제작연대, 작자 등 어느 것 하나 시원스럽게 밝혀지지 않은 채 여전히 구구한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길이 34㎝, 폭 12.5㎝의 바위에 글자를 음각한 비석에는 모두 5행 74자의 글이 보인다.
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幷誓記天前誓今自
三年以後忠道執持過失无誓若此事失
天大罪得誓若國不安大亂世可容
行誓之 友別先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임신년(壬申年) 6월16일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며 쓴다. 하늘 앞에 맹세하노니 지금부터 3년 후에는 충성의 도(道)를 확실히 잡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맹세를 어기면 하늘로부터 큰 죄를 얻게 됨을 맹세한다. 만약 나라가 불안하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면 행해야 할 것을 받아들임을 맹세한다…3년 내에 시경(詩經), 상서, 예기와 춘추전을 습득할 것을 맹세하였다.
▲임신서기석(신라 552년)
한문이라기보다는 우리말 어순에 따라 한문을 구성했다는 점과 신라의 다른 금석문 자료와는 달리 완벽하게 글자가 남아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애국심과 학구열을 주체하지 못해 친구 둘이서 ‘충성’과 ‘공부’를 맹세한 내용을 돌에 새겼다는 것은 외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유물이다. 특히 신라사회가 맹세나 약속을 다질 때 관습적으로 ‘3년’을 설정했음을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다.
임신서기석을 둘러싸고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제작연대. 우선 비문에 언급된 시경, 예기 등 유교경전을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제작연대가 무려 180년이나 차이가 난다. 일본학자 스에마쓰 야쓰카즈(末松保和)는 임신년을 통일신라시대 성덕왕 31년인 732년으로 보았다. 신라에 국학이 설치돼 체제를 갖춘 것이 신문왕 2년(682년)이니 만큼 그 뒷날 임신년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학자들은 국학이 도입되기 전부터 중국으로부터 유교경전이 광범위하게 수입돼 화랑이나 귀족 청년들이 경전을 익혔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임신년을 화랑도가 융성했던 진흥왕 13년(552년)이나 진평왕 34년(612년)으로 해석한다.
우리 학자들 역시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진평왕대의 대문장가 강수가 청년기에 읽으려 했다는 책들과 이 두 청년이 열거한 경전이 일부 겹친다는 점에서 612년으로 보는 견해와 신라 전체가 북진의 열망을 드높였던 진흥왕대의 552년으로 보는 견해가 팽팽히 맞선다. 최근에는 음각된 서체의 장법(章法·주어진 지면에 문자를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방법)과 결구(結構·글자를 이루는 획의 구성과 짜임), 필획 등을 분석해 ‘552년’으로 보아야 한다는 서예학자의 견해도 나오고 있다. 과연 비석을 쓴 주인공들이 화랑도냐, 아니냐의 논란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나라에 충성을 바치려는 각오만으로 화랑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다.
<2009.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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