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법천사터 지광국사 현묘탑비
법천사(法泉寺)는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법상종 사찰로 명봉산(鳴鳳山) 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지광국사 현묘탑비와 법당터 및 석탑의 일부 등이 남아 있으며, 주변에는 이 절터에서 나온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절터의 동편 산 기슭에는 지광국사의 부도를 모셨던 탑전지가 남아있다. 부도는 서울로 옮겨졌으나 탑비는 그대로 남아있다. 탑전지는 높게 쌓은 축대 위에 건물을 지었으며, 왼쪽의 건물 터 위에는 기둥을 받치던 돌인 주초석, 불상의 뒤를 장식하던 광배, 계단 사이를 장식하던 대담하고 화려한 조각의 답도석(踏道石), 그리고 예배를 드리던 단인 배례석, 석탑재 등 이곳에서 출토된 석재를 모아놓았다.
이 절에 관하여 남아있는 최초의 기록은 신라 경순왕 2년(928)으로 신라 하대에 이 지역의 대표적인 사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무신정권 이전까지 법상종의 대표적 사찰로 문벌 귀족의 후원을 받아 번성한 사찰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관웅(寬雄), 지광국사, 정현(鼎賢), 덕겸(德謙), 관오(觀奧), 각관(覺觀) 등 유명한 승려가 계셨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유방선(柳方善)이란 학자가 이 곳에 머물며 제자를 가르쳤다고 하며, 이때 한명회, 서거정, 권람 등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허균의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지광국사 현묘탑비는 고려 선종 2년(1085)에 세워진 4.55m 높이의 석비로 고려시대 석비로서의 특징적인 양식을 보이는 걸작품으로 조각 또한 정묘하다. 귀부는 넓은 지대석 위에 놓였고 밑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용두화된 거북머리의 목은 길게 곧추서서 정면을 향하고 목에는 물고기비늘을 표현했다. 등에는 네모 구획 안에 따로 귀갑문을 새겼으며 다시 그 안에 '王'자를 양각했다. 등의 중앙에는 간결한 복련의 비좌를 마련하여 비신을 세웠다. 비신의 바깥 둘레에 보상당초문을 조각하여 돌린 것이 특징이며 양 측면에 쌍룡을 조각한 것도 특이하다. 이수는 모자를 쓴 듯한 형태이며 네 귀에 전각이 뚜렷하고 귀꽃이 있다. 이수 중앙에 상륜부를 두어 보주를 얹었다. 지광국사는 고려 성종 3년(984)에 태어났는데 속명은 해린이다. 목종 2년(999)에 용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역대 왕의 우대를 받았으며 삼중대사, 승통이 된 후 문종 12년(1085)에 국사가 되었다. 동왕 21년(1067) 84세로 이곳 법천사에서 세상을 더났다. 문문은 정유선이 짓고 안민후가 글씨를 썼다.
▲지광국사 현묘탑비
▲이수
▲비신
▲비신
▲귀부
▲귀부
▲용두
▲귀갑문
▲전액
▲비문
▲법천사터
▲건물터
▲건물터
▲건물터
▲건물터
▲광배
▲부도
▲석탑재
▲연화대석
▲석물
▲석물의 문양
▲전액 탁본(원주시립박물관)
▲비문 탁본(원주시립박물관)
<2008.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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