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시엠립 킬링필드 위령탑
시엠립 시내의 와트마이 사원 내에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 정권 치하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킬링필드 위령탑(Killing Field Memorial)이 있다. 위령탑 안에는 당시 죽어간 사람들의 유골 일부가 유리창 안에 남아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또한 위령탑 옆에 당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사진 일부를 게시해 놓았다. 폴 포트의 급진공산정권(1975~79)은 캄보디아 국민에게 도시에서의 강제적인 대량소개(大量疏開)와 수백만 명에 대한 살해와 추방, 질병과 기아 등을 유산으로 남겨놓았다.
▲킬링필드 위령탑
▲위령탑 내의 유골
폴 포트는 농가에서 태어나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불교사원에서 6년간 생활했는데, 그중 2년간은 승려로 지냈다고 한다. 그는 프놈펜의 기술학교에서 1년간 목수일을 배웠다. 1940년대에 폴 포트는 호치민 휘하에서 반(反)프랑스 저항운동에 가담했으며, 1946년부터는 캄보디아 공산당원이 되었다. 1949년 8월 무선전자공학을 배우기 위해 파리에 유학 간 폴 포트는 학문보다는 혁명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여러 번의 시험에 낙제함으로써 장학금이 끊겨 1953년 1월 프놈펜으로 돌아왔다. 프놈펜에서 1954~63년 사립학교 교사로 생활했으나, 경찰이 그가 공산주의자와 연루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으므로 수도를 떠났다.
▲와트마이 사원
▲와트마이 사원의 불상
그후 1960년에 캄보디아에서 조직된 공산당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당 서기로서 12년간을 헌신했다. 노로돔 시아누크 정부와 론놀 장군의 군사정부에 대한 정적으로서 폴 포트는 크메르 루주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1975년 론놀 정부를 전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76년부터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정부가 무너진 1979년 1월까지 크메르 루주 정부의 총리로 일했다. 폴 포트 휘하의 크메르 루주 정부는 1975~79년 강제노역·기아·질병·고문·처형 등으로 약 200만 명의 사람들을 희생시킨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와트마이 사원
▲와트마이 사원 산문
폴 포트는 베트남이 지원하는 신(新)캄보디아 정부에 대항해서 싸우기 위해 크메르 루주군을 이끌고 캄보디아 남서부 산악지대로 철수했는데, 신캄보디아 정부는 폴 포트가 공산당의 지도자로 있는 한 크메르 루주군과 평화협상을 할 생각이 없다고 발표했다. 1985년 공식적으로 폴 포트는 크메르 루주의 정치적·군사적 지도자직에서 물러났다. 1997년 6월 자신의 과거 동료들에게 체포되었으며 7월에 열린 공개재판에서 반역죄를 선고받고 감금되었다가 이듬해 사망했다.
▲와트마이 사원 탑원
<2008.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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