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2007. 12. 10. 07:21◈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경주 남산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용장사터에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삼륜대좌불이 있다. 이 삼륜대좌불은 미륵불로 추정되고 있는데 그것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즉 경덕왕 때의 고승인 태현 스님께서 용장사에 있는 미륵불을 돌면서 예불을 하면 미륵불도 태현을 따라서 같이 돌았다는 기록이다. 대현(大賢)스님은 유가종(瑜伽宗)의 시조였는데 용장사절에 관세음보살의 돌 부처가 있어 대현이 언제나 그 석불 주위를 도는데 석불도 역시 대현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이 돌부처가 바로 삼륜대좌불일 것으로 생각된다.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대현은 교리의 해석이 명쾌하여 판단과 선택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대개 법상종(法相宗)을 평가함에는 그 이치가 심오하여 뜻을 분석하기가 어려워 중국의 명사인 백거이(白居易)도 일찍이 이것을 알아내지 못하고는, “오묘하여 뚫어내기 어려움을 알았을 뿐, 밝게 쪼개어 드러낼 수 없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학자들이 알려고 애쓴 지가 오래되었다. 대현이 홀로 그릇된 것을 고쳐서 결정하고 심오한 데를 파헤쳐 능란하게 분석하여 동방의 후진들이 다 그의 교훈을 준수하고 중국의 학자들도 때때로 이것을 얻어서 안목으로 삼았다.

 

경덕왕 천보 12년(753) 계사 여름에 크게 가물자 왕이 대현을 내전으로 불러들여 「금광경(金光經)」을 강설하여 단비가 오도록 기도하게 하였다. 재를 올리는 첫날에 바리때를 펴놓고 한참 되었으나 정화수 바치기를 더디게 하였다. 일을 돌보는 관리가 심부름하는 자를 나무라니 그가 말하기를 대궐 우물이 말라서 멀리서 길어오기 때문에 늦다고 하였다. 대현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하고 낮 강연을 할 때가 되어 향로를 받들고 잠자코 있으니 조금 있다가 우물물이 솟아올라 높이가 일곱길쯤이나 되어 절 깃대의 키와 같아지니 온 대궐 안이 깜짝 놀랐다. 따라서 그 우물을 금광정(金光井)이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현유가 해화엄(賢瑜伽海華嚴)조>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삼륜의 대좌는 불법과 관련지어 불법을 굴리는 바퀴를 의미한다. 이불상의 특징은 앞부분은 옷 주름을 무릎 위에 늘어뜨린 상현좌를 뒷부분은 연화대좌를 나타내었다는 점과 항마촉지인의 수인이 왼손과 오른손의 모양이 반대로 되었다. 즉 역항마촉지인이다. 이것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이 불상이 유일한 예이다. 이 불상은 태현이 예불했다는 불상으로 미륵불로 추정된다.

  

삼륜대좌불은 목이 떨어지고 없는데 이것은 조선후기 대원군의 남연군묘 사건이후 전국에 걸쳐 이른바 명당을 찾기 위한 양반들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다. 단 독립된 불상에는 모두 목을 쳤지만 마애불만은 손을 대지 않았다는 점은 그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 불상을 파괴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조선총독부 수리기록

 

 

 

<2007.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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