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진전사터(陳田寺址) 삼층석탑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8세기 경에는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6세기 경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절은 우리나라 선종을 크게 일으킨 도의선사가 신라 헌덕왕 13년(821)에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랫동안 은거하던 곳으로 염거화상이나 보조선사와 같은 고승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고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도 이곳에서 체발득도하였다. 일연스님의 출가와 진전사에서의 수행생활에 대하여 스님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흥정(興定) 기묘(己卯, 1219)에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의 장로(長老) 대웅(大雄)에게 나아가 체발(剃髮)하고 득도(得道)하여 구족계(具足戒)를 수지(受持)하였다. 이제 제방선원(禪肆)을 돌아다니며 수행(游歷)하니 이로부터 스님의 명성(聲價)이 자자(藉藉)하였다. 이때에 대중들이 추대하여 구산문(九山門) 사선(山四)의 우두머리로 삼았다.(興定己卯就陳田長老大雄剃度受具於是游歷禪肆聲價籍甚時輩推爲九山四禪之首)
일연스님은 14살 되던 해에 그동안 공부하던 해양(광주)의 무량사를 따나 천리 먼곳 이곳 진전사터까지 와서 출가 했던 것이다. 그리고 22살이 될 때까지 8년간을 진전사에서 공부하며 보냈다. 그러면서 진전사 부근의 여러 이름난 절들을 돌아다니며 공부하였다. 이때 일염스님이 돌아다닌 절들은 바로 양양의 낙산사와 강릉의 굴산사 등이라고 한다. 이때 그 절돌을 돌면서 후에 삼국유사에 담아놓은 '낙산의 두 성인 관음과 정취 그리고 조신'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진전사터 삼층석탑은 높은 지대석 위에 이중기단을 설치하고 3층탑신을 조성한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의 석탑이다. 아래기단에는 연화좌 위에 광배를 갖춘 비천상이 각면에 2구씩 조각되었고, 윗기단에는 팔부신중상이 각면에 2구씩 조각되어있다. 1층 탑신에는 여래좌상이 각면에 1구씩 조각되었다. 탑신과 옥개석은 한개의 돌로 간결하게 만들었는데, 옥개석은 받침이 5단이고 추녀의 네 귀가 약간 치켜들어 경쾌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풍경이 달렸던 자리가 남아있다. 이탑은 높이가 5m로 상륜부가 모두 없어졌으나 완숙하고 세련된 불상조각이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중 하나이다.
*진전사터(陳田寺址)
*진전사터(陳田寺址) 삼층석탑
*진전사터(陳田寺址) 삼층석탑
*진전사터(陳田寺址) 삼층석탑
*탑신부
*탑신부
*기단부
*진전사터(陳田寺址)
*진전사터(陳田寺址)
*진전사터(陳田寺址)
*진전사터(陳田寺址)
*진전사터(陳田寺址)
*여래좌상
*여래좌상
*여래좌상
*여래좌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비천상
*비천상
*비천상
*비천상
*비천상
*비천상
*비천상
*비천상
*초석
<2007.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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