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사자산 법흥사(獅子山法興寺)
통일신라 말기 9산선문 중 사자산문의 중심도량인 법흥사(法興寺)는 흥령선원의 옛터이다.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했으며, 도선국사와 징효국사 때 크게 산문이 번성하였다. 그러나 진성여왕 4년(891) 병화로 소실되었고, 고려 혜종 1년(944)에 중건하였으나, 그 뒤 또 다시 소실된 채 천년 가까이 그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 법흥사로 개칭되었다. 이곳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과, 징효대사 보인탑비, 징효대사 부도, 법흥사 부도, 법흥사 석분등의 유물이 남아있다.
*법흥사 전경
*법흥사 극락전
*흥녕사 징효대사 부도
법흥사 극락전 동북쪽 언덕에 있는 징효대사 부도는 8각원당형을 기본으로 삼았으며, 二板石(이판석)으로 구성된 방형의 지대석 위에 건립되어 있다. 지대석 위에는 8각 하대석이 있고 그 위에는 연화대석이 놓였는데 하대의 각 측면에는 안상이 음각되어 있다. 연화대석에는 八瓣(팔판)의 伏蓮(복련)이 돌려져 있고, 각 우각마다 複葉(복엽)이 한판씩 배치되어 있으며 그 끝에는 귀꽃이 장식되어 있다. 복련대 위에는 갑석형의 높직한 8각 괴임대가 마련되어 중대석을 받게 되었다. 중대석은 一石(일석)으로 조성되었는데 8각의 탑신형 으로 각 면에는 隅柱(우주)가 있다. 상대석의 상면은 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아래쪽에는 8각의 괴임이 있고 그 위로 측면에는 단엽앙연이 이중으로 조각되어 있다. 원형의 상면 중앙에는 8각의 높직한 각형받침을 각출하여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은 배가 부른 8각의 鼓腹形(고복형)으로 전후 양면에는 문비가 모각되어 있으나, 그 밖의 각 면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8각의 옥개석은 一石으로 조성되었는데, 그 하면의 중심부에는 높직한 8각의 呼兄(호형)의 괴임이 조각되어 탑신 상단부와 맞도록 되어 있다.
*징효대사 부도 앙련
*보호수
*법흥사 징효대사 부도비
낙수면은 위에서 밑으로 내려 오면서 점차 완만해 지고 있어 전체적으로 평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추녀 끝 전각의 상단에는 귀꽃이 조각되어 한충 경쾌한 느낌을 준다. 옥개 頂面(정면)에는 복엽의 복연을 조각하고 그 위에 1단의 형 받침을 각출하여 8각의 竿石(간석)을놓고 그 위에 보개를 받게 하였다. 보개석은 옥개석과 거의 같은 양식으로 전각에는 귀꽃이 있다. 보개 정면에는 1단의 각형 받침을 마련하고 그 위에 一石으로 조성된 연뇌형의 보주를 얹어 상륜을 삼고 있다. 이 부도는 하대석의 구성과 안상 및 복연, 귀꽃 등 각 부분의 조식 수법이 羅末麗初(라말려초)에 많이 유행된 석조부도와 흡사하다. 그 밖에도 이 부도는 중첩된 앙연, 탑신부의 문비모각양식,옥개석의 추녀와 귀꽃의 장식수법도 고려초엽까지 통용된 수법이다. 높이267cm, 지대석의 한변의 넓이는 135cm이다.
*법흥사 징효대사 부도비 이수
*법흥사 징효대사 부도비 귀부
*법흥사 징효대사 부도비 귀부
흥녕사 징효대사보인탑비는 943년(혜종 1)에 세운 것이다. 징효대사는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연 철감선사 도윤의 제자로 흥녕사(법흥사의 옛 이름)에서 선종의 법문을 크게 일으켰던 스님이다. 비석의 글은 최인위가 짓고 최윤이 썼으며 최환규가 새겼다. 비석의 내용은 징효대사가 평생동안 한 일과 신라 효공왕이 징효대사라는 시호와 보인이라는 탑명을 내린 것 등을 적고 있다. 이 비석은 신라말 고려초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탑비로 비 받침은 거북모양이며, 비몸 받침 위에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용을 새긴 비 머릿돌을 얹었다. 비 받침의 거북머리는 용 머리를 보떴는데 부릅뜬 눈에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비 머릿돌에는 메 마리의 용과 '고징효대사'라는 전서체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비 머릿돌 위에는 장식물인 보륜, 보주를 얹어놓았다. 이 비석은 전체적으로 섬세하면서도 웅건한 느낌을 준다.
*법흥사 적멸보궁 가는 길
*법흥사 적멸보궁 가는 길
*법흥사 적멸보궁
법흥사에서 가장 높은 곳인 이곳 적멸보궁에는 석분(石墳)과 부도가 각각 1기씩 나란히 서 있다. 이곳은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도를 닦던 곳이라고 전한다. 돌방(石墳)의 겉모습은 흑을 봉긋하게 덮어 무덤처럼 보인다. 돌방의 입구는 네모꼴로 만들어졌으며, 통로를 통해 돌방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바닥은 평평하고 벽면은 둥그스름하다. 돌방 벽은 6단을 수직으로 쌓았고, 7단부터 큰돌로 모줄임하여 10간까지 쌓아 한장의 돌로 덮었다. 돌방 안의 크기는 높이 160cm, 길이 150cm, 너비 190cm 정도이다. 돌방 안에는 지금 돌방 뒤편에 있는 돌널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돌널의 용도는 고승의 유골을 모셨던 것으로 보이며, 돌방은 스님의 도를 닦던 곳으로 보인다. 지금은 화강암으로 단을 쌓아 들어갈 수 없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법흥사 적멸보궁 석분과 부도
*법흥사 적멸보궁 석분
*법흥사 적멸보궁 부도
석분과 나란히 서 있는 이 부도는 징효대사 부도와 같은 형식이나 누구의 부도인지 알려져 있지않다. 일명 사리탑이라고 하는 이 부도는 넓고 네모난 돌을 바닥에 깔고 1단의 층을 만들어 판각의 아래 받침돌과 겹꽃잎 연꽃무늬가 새겨진 받침돌을 놓았다. 아래 받침돌 각면에는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큼직한 꽃들을 돋을새김하였다. 가운데 받침돌은 팔각으로 감면에는 양쪽에 모서리기둥을 새겼다. 위 받침돌은 옆면을 둥근모양으로 두겹의 연꽃을 새겨놓았다. 몸돌은 위, 아래가 약간 좁아진 배흘림이 있는 팔각으로 앞, 뒤 양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비가 새겨져 있고, 나머지 여섯면에는 신장상을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은 아래면에는 3단의 괴임이 있으며, 지붕면은 들려있고 지붕돌 위에는 복발을 얹어 놓았으며 보개는 지붕돌과 모양이 같고 긔 위에 보주가 있다.
*법흥사 적멸보궁 부도 문비
*법흥사 적멸보궁 부도 신장상
*법흥사 적멸보궁 부도 신장상
*법흥사 적멸보궁 부도 하대 복련
<2007.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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