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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목판비로자나삼존도

蔥叟 2007. 7. 5. 05:38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목판비로자나삼존도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목판으로 인쇄한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에 있는 비로자나삼존불 그림이다. 본존인 비로자나부처가 지권인을 맺고 있지 않거나 보관을 쓰는 등 전형적인 비로자나부처와는 다른 모습이다. 비로자나부처는 형상을 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었다.

 

*목판비로자나삼존도(조선시대)

  

   비로자나는 범어인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한 것이며 본래 인도에서는 빛(光明), 즉 태양을 의미하였다. 이를 한자로 의역하여 '허공과 같이 끝없이 어느 곳에나 두루 가득 찼다'는 의미의 '편일체처(遍一切處)', '빛이 온 세계 온 생명에게 비친다'는 의미의 '광명편조(光明遍照)', '편조(遍照)'라고도 한다.

 

   이 비로자나의 유래에 대해서는 인도의 태양신인 비슈누(Visnu)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인도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아수라(Asura)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비로자나는 자연의 태양을 상징하는 비슈누나, 빛의 신이 악마로 바뀌었다가 빛의 신으로 변하는 존재인 아수라와는 달리 언제 어디서나 모든 생명에게 두루 비치는 진리의 빛이다.

 

   '화엄경'을 살펴보면, 비로자나부처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이 가득찬 연화장세계의 사자좌 위에 앉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모습도 없고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오직 비로자나부처가 내뿜는 진리의 빛을 받은 보현보살을 비롯한 수많은 보살이 뭇 생명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설법을 할 뿐이다.

 

   8세기 신라 사람들은 진리 그 자체인 비로자나께 예배드리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비로자나부처를 볼 수 있는 그림이나 불상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밀교의 영향을 받아 보살의 모습에 지권인을 맺은 비로자나부처로 나타내었다. 그러나 신라인들은 보살모습의 비로자나부처가 '롸엄경'의 내용에 걸맞지 않다는 것을 간파하고, 곧바로 순수한 부처모습에 지권인을 맺은 새로운 비로자나부처를 창안하였다.

 

   9세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자나부처는 온 신라 땅을 뒤덮었다.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를 선종사찰에서도 만들었는가 하면 깊은 골자기 바위에도 새겼다. 이렇게 크게 유행한 이유는 지구가 도는 것이 그 어누 누구에게도 불변의 진리이듯, 불교의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부처 또한 화엄종이든 선종이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불변의 진리였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도 비로자나부처가 조성되기는 하였지만 그 수효는 통일신라시대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절의 불단이나 높은 바위에서 내려와 중생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섰다. 이 시기 비로자나부처는 길모퉁이에서, 때로는 어려운 경전의 내용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만든 그림(變相圖) 속에서, 거울속에서 부처를 모신 작은 집(龕室) 안에서 진리의 빛을 내뿜었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지만 천년 넘게 우리 민족의 생활 깊숙히 파고든 불교가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전 시기에 찾아볼 수 없었던 커다란 그림이나 커다란 조각으로 비로자나부처를 나타내었다.

 

 

 

<2007.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