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낙남문화권

창녕 광산서당(光山書堂)

蔥叟 2007. 5. 16. 06:19

창녕 광산서당(光山書堂)

 

   광산서당(光山書堂)은 병자호란(1636년) 때 창녕 일대의 의병을 모아 남한산성(南韓山城)에서 활양했던 양훤(楊喧)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당이다.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은거하여 세상에 나가지 않고 후학을 가르쳤던 이곳은 서고(書庫)까지 갖추고 있다. 대들보에는  "崇禎紀元 戊辰後 正回乙亥正月三十日 酉時 竪柱 二月二十日 酉時上樑"이란 묵서가 있어 1899년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광산서당에는 고려말에 중국에서 귀화한 양기(楊起)와 그의 12세손인 졸헌(拙軒) 양허국(楊許國, 1576~1660). 그의 아들 어촌(漁村) 양훤(楊喧, 1597~1650), 그리고 양훤의 아들 무금당 양도남(無禁堂 楊道南, 1624~1701)의 글을 모아 만든 '청주세록(淸州世錄)'을 간행하기 위하여 만든 청주 양씨 세고 목판(淸州楊氏世稿木板) 135매가 보관되어 있다.

 

   청주세록은 모두 7권 4책으로 되어 있다. 1책은 양기의 사적을 기록한 충헌공암곡사실(忠憲公岩谷事實), 2책은 양허국의 문집인 졸헌유고(拙軒遺稿), 3책은 양훤의 글을 모은 어촌유고(漁村遺稿), 4책은 양도남의 글을 모은 무금당유고(無禁堂遺稿) 순으로 되어 있다.  어촌유고만 3권에서 6권까지 4권으로 되어있고 , 나머지는 모두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각각 흩어져 있던 것을 한말에 모아서 간행하였다. 양기는 공민왕의 왕비가 된 노국공주(魯國公主, ?~1365)를 따라 고려에 온 후 귀화한 사람이다.

 

*삼문 

 

*삼문

 

*광산서당(光山書堂)

 

*광산서당(光山書堂)

 

*광산서당(光山書堂)

 

*원주

 

*광산서당(光山書堂)

 

*춘성루

 

*춘성루 석주

 

*석주

 

*광산서당(光山書堂) 편액

  

*광재헌 편액

 

*춘성루 편액

 

*동재

 

*서제

 

 

 

<2007.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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