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전양피사터 동서삼층석탑
서출지 남쪽으로 5분정도 길을 따라 걸으면 왼편으로 또 다른 저수지가 보이고 오른편에 두 개의 석탑이 보인다. 여기가 남산리 쌍탑이다. 쌍탑이라지만 동탑과 서탑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
*양피사터 전경
*동삼층석탑
이러한 모습은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이 전형적인 것인데 이곳 남산리에서도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쌍탑들은 모두가 동서탑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감은사터동서쌍탑, 천군동 절터 동서쌍탑, 그리고 원원사터 동서 쌍탑이 모두 그러하다.
*동삼층석탑 탑신부
*동삼층석탑 기단부
8세기말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서로 다른 모양을 한 동서탑이 서 있는 이곳은 아직 정확한 절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삼국유사 염불사조에 나오는 양피사터로 비정되어진다. 절은 없어졌지만 동서 쌍탑과 주변에 석등 연화대석을 비롯한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신라의 사찰에 동서로 쌍탑이 세워지는 것은 사천왕사와 망덕사에 목탑으로 처음 세워지면서 감은사나 천군동 절터에 이르기까지 같은 모양의 쌍탑이 석탑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불국사를 조영하면서 동서쌍탑은 석가탑과 다보탑이라는 좌우에 서로 이질적인 탑을 비대칭으로 세우고 대웅전과 극락전의 높이도 서로 다르게, 또 범영루와 좌경루도 비대칭을 이루는 구조로 건립하였다.
*서삼층석탑
*서삼층석탑
이와 같은 형식은 남산 삼릉계의 선각 석가·아미타 불상과 이곳 남산리 탑에서 나타난 이후에는 다시 조영되지 않았다. 이러한 양식이 신라인들에게 크게 환영받지는 못했던 것일까?
동편 석탑은 일반형 석탑과는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황룡사구층목탑에서 시작되어 신라 말기까지 유행한 탑구(塔區)를 기단부 사방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기단부는 아무런 조각이 없고 8매의 방형 석재로 쌓았다. 그리고 몸돌에도 우주가 없으며 지붕돌 층급받침은 아래위에 모두 조각하였다. 이와 같은 양식의 탑은 분황사 모전석탑을 원형으로 하는 것으로 의성의 탑리 오층석탑과 빙산사터 오층석탑, 그리고 경주에서도 서악동 삼층석탑 그리고 오늘 가보게되는 남산 용장골 제17절터 폐모전석탑도 같은 계열의 석탑이다.
*서삼층석탑 탑신부
*서삼층석탑 기단부 팔부신중상(긴나라, 마후라가)
서편 석탑은 신라의 일반형 석탑인데 특징적인 것은 2층기단부에 팔부신중상을 조각하였다. 탑에 팔부신중상을 조각하는 것은 창림사 석탑(750년경)에서 그 최초의 예를 볼 수 있으며 8세기말에는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었다. 팔부신중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천의자락을 날리고 있는 모습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호법신(護法神)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본래 인도의 토착신이었는데 불교에 도입되어 불법을 수호하게 되었다. 그들의 계보를 볼 것 같으면 가장 상위의 호법신은 범천과 제석천이며 그 다음으로 사천왕, 금강역사, 팔부신중, 마지막이 12지신이 된다.
*서삼층석탑 기단부 팔부신중상(아수라, 건달바)
*석등 하대석과 장대석
이 절터는 삼국유사 염불사(念佛師)조에 나오는 양피사로 추정된다. 삼층석탑 옆의 연못 이름이 양피못(讓避池)이니 이 절의 이름도 양피사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 양피못이 진짜 서출지가 아닐까? 『삼국유사』 의 서출지 전설에 「피촌(避村)은 지금의 양피사촌(讓避寺村)」이라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가 피촌이며 이 연못이 바로 서출지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남산리의 노인들도 이요당이 있는 현재의 서출지가 그리 오래된 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2006.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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