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옥산마을 독락당
옥산서원에서 서북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독락당(獨樂堂)은 이름이 뜻하는 대로 회재 이언적이 중종 27년(1532)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살던 집의 사랑채의 이름으로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도 한다. ‘독락당’ 편액은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의 글씨이며 ‘옥산정사’ 편액은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독락당의 동편에는 계곡이 흐르고 그 사이에는 담장이 있어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나 담장의 일부를 뚫고 살창을 설치하여 계곡에 흐르는 시냇물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또 독락당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별당으로 지어진 계정(溪亭)일 것이다. 계정은 방 한칸과 마루 두칸에다 계곡 쪽으로 쪽마루를 내고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두른 간단한 구조이다. 그러나 계정은 계곡의 물과 바위, 푸른 숲과 이어지는 자연 속의 공간이다. 1688년 계정에 올랐던 우담 정시한은 그의 기행문집인 ‘산중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정자는 솔숲 사이 너럭바위 위에 있는데 고요하고 깨끗하며 그윽하고 빼어나 거의 티끌 세상에 있지 않은 듯하다. 정자에 올라 난간에 의지하여 계곡을 바라보니 못물은 맑고 깊으며 소나무, 대나무가 주위를 감쌌다. 관어대(觀魚臺)․영귀대(詠歸臺) 등은 평평하고 널찍하며 반듯반듯 층을 이루어 하늘의 조화로 이루어졌지만 마치 사람의 손에서 나온 듯하다. 집과 방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 계곡과 산에 잘 어울린다.”
오른쪽 벽에는 ‘계정’ 편액이 붙어 있는데 한석봉의 글씨이다. 계정의 한쪽 작은 방 위에는 ‘양진암’(養眞菴)이라고 쓴 커다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양진암은 이름 그대로 마치 암자와 같이 쓰인 곳이라고 한다. 회재는 어린 시절에 여기서 글을 읽었고, 낙향하여 은둔하던 시절에는 정혜사의 승려와 함께 교류하며 학문과 사상을 나누던 곳이었다고 한다.
*독락당의 외향적 경관
*독락당의 외향적 경관
*독락당의 외향적 경관
*솟을대문
*솟을대문
*하마석
*경청재
*경청재 편액
*독락당 내문
*독락당 안길
*자계와 계정
*독락당
*계정
*관어대와 계정
*관어대
*영귀대
*탁영대
*자계
*자계
*계정
*계정
*독락당 향나무
*독락당
*계정
<2006.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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