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금강문화권

부여 부소산성 금동광배

蔥叟 2006. 7. 26. 07:34

부여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

<국립중앙박물관>

 

*금동광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991년 부여 부소산성 동문(東門) 터에서 발굴한 백제시대 금동광배 뒷면에 적힌 여섯 글자가 "하다의장(何多宜藏)이 불상을 만들었다"를 의미하는 '하다의장치불'(何多宜藏治佛)인 것으로 드러났다.

앞면에 연꽃무늬와 인동초 문양을 화려하게 넣은 이 금동광배 뒷면에는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쓴 여섯 글자가 있다는 사실은 일반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나마 기존 학계에서는 '하다의장법사'(何多宜藏法師·하다의장이라는 이름의 승려)라고 읽었다.

 

하지만 발굴조사 직후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에서 이를 보존처리한 김선덕 서진문화재연구소장과 중문학자인 김영문 박사는 학술단체인 문문(문헌과 문물. 회장 홍승직)이 21일 충북 진천 종박물관에서 개최하는 연차 학술대회를 통해 기존 판독을 바로잡은 성과를 발표한다.

주최 측이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두 사람은 기존에 '법사'(法師)로 판독한 두 글자는 초서로 흘려 쓴 글자를 잘못 본 데서 기인하며, 실제는 불상을 만든다는 뜻의 '치불'(治佛)임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하다의장은 불상을 직접 만든 인물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제작 의뢰한 발원자일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았다.

두 사람은 이런 판독을 문자학·불교학 등 분야의 문문회원들이 참여한 집중 토론과 분석을 거쳐 확정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발표자들은 현재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상설 전시 중인 이 금동광배를 만든 인명에서 확인한 백제의 성씨 '하다'(何多)는 바로 고대 일본에서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긴 한반도계 도래 씨족인 '하타씨'(秦氏)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불교미술사 전공인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는 "이 금동광배가 사비도읍기 백제시대 유물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 "광배 지름이 12.7㎝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광배를 머리 뒤에 부착한 불상은 아무리 커도 높이 20㎝를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백제시대 불상 발원자가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번 명문(銘文) 판독은 백제불교미술사 연구에 적지 않은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번 문문 학술대회에는 1971년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비 은팔찌에 적힌 글자 판독에 대해서도 파격적인 주장이 나온다.

보통 이들 글자는 '경자년이월다리작대부인삽이백주이'(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삽<三十을 합친 글자>主耳)라고 판독하고는 경자년(庚子年. 520년. 무령왕 20년)에 다리(多利)라는 장인이 만들었으며, 대부인(大夫人)의 것으로 (이를 만드는데 쓰인 은은) 230주(主)가 들어갔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하지만 역사학과 한문학 전공인 기호철 서울의대 고병리연구실 연구원은 기존 판독이나 해석은 억지로 끼워 맞춘 것으로 무엇보다 이런 문장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기존에 '삽'으로 본 글자는 '世'(세)이고 단위로 본 '分'(분)이라는 글자는 어(於), 혜(兮), 영(永) 등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새로운 판독에 기초해 이 문장을 해석하면 '다리'(多利)는 팔찌를 만드는 기관이거나 무령왕비가 '다리작대부인'(多利作大夫人)으로 일컬어졌고, 팔찌 소유자인 왕비가 오래도록 이 팔찌의 주인이라는 의미를 새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다리가 대부인을 위해 팔찌를 만들었다는 맥락으로 파악한 '다리작대부인'(多利作大夫人)이 실은 '다리작'이라는 이름의 무령왕비가 될 수도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이라 관심을 모은다.

백제사 전공인 김영관 제주대 교수는 "기존 판독에 대한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한 담대한 발상"이라면서 "충분한 설득력이 있으며, 이를 계기로 기존 판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최근 발굴된 남원 실상사 원지와 고인골을 통한 얼굴 복원, 고대 이스라엘의 바알 종교 등에 대한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2006.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