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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순성길 - 서울 한양도성 흥인문

蔥叟 2017. 12. 4. 15:16

한양도성 순성길 - 서울 한양도성 흥인문

 

흥인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처음 지어졌다. 1453(단종 1)1869(고종 6)에 고쳐지었다. 본래 흥인지문은 동대문구에 속했고 구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되었으나, 수차례 행정구역이 조정되면서 지금은 종로구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흥인문은 일대의 지반이 낮아 땅을 돋운 뒤 건설하여야 해서 1396(태조 5) 9월 다른 성문을 건립할 때에도 공사중이었으며, 1398(태조 7)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 때의 이름은 흥인문(興仁門)이었다. 1451(문종 1) 3월에는 도성을 고쳐 쌓은 뒤 기한이 남아, 흥인지문을 혜화문과 더불어 수리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본격적인 흥인지문 정비를 시작하여, 1453(단종 1) 5월에 완료하였다.

 

1724(영조 즉위년)에는 발인 때 상여가 나가기가 쉽게 하기 위하여, 국장도감에서 건의한 대로 흥인지문의 박석을 파내려갔다. 1868(고종 5)에는 흥인지문이 크게 손상되었기에 의정부에서 그 수리를 요청하였다. 이듬해 3월에 중수를 끝냈다. 이 즈음 풍수지리에 따라 한양 동쪽의 지기가 약하다고 하여 그 기운을 북돋기 위해 넉 자로 이름을 고쳤다고 전해진다1907(고종 44) 3월에는 흥인문과 숭례문의 좌우측 성벽을 8칸씩 헐어 전차 선로를 부설하였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 1호로 지정되었는데, 이것이 흥인지문을 숭례문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지나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상징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1999년에는 옹성이 붕괴되어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3억여원을 들여 보수하였으나, 옹성 아랫부분이 튀어나오는 '배부름 현상'이 일어나 재시공을 결정하였다.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지하수위가 낮아지고 지반이 침하되었으며, 200212월부터 20078월까지 옹성을 해체하여 지반 보강 후 복원하였다. 2015년에는 문 북쪽의 도성과 연계하여 석재를 포장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화강석으로 된 홍예문의 축석 위에 지어졌으며, 도성의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다. 앞면 5·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모양을 한 우진각 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그 형태가 가늘고 약하며 지나치게 장식한 부분이 많아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또한 바깥쪽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반원 모양의 옹성(甕城)을 쌓았는데, 이는 적을 공격하기에 합리적으로 계획된 시설이라 할 수 있다. 숭례문이 조선 초기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흥인지문은 조선 후기 양식으로 되어 있어 서로 대비된다.


▲흥인문

 

▲흥인문

 

▲흥인문

 

▲흥인문

 

▲흥인문

 

▲흥인문

 

 

 

<2017.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