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문화순례◈/항주문화권

강남 제일의 풍수 명당 - 중국 무의 곽동촌

蔥叟 2017. 4. 1. 08:25

강남 제일의 풍수 명당 - 중국 무의 곽동촌

 

郭洞村

아늑한 골목과 오래된 건물, 고요한 연못, 기이한 산봉, 험준한 벼랑의 곽동은 산수와 수목, 옛 다리와 옛 사찰, 옛 성이 비경이다. 촌락을 둘러싼 산들이 마치 성곽과 같고 그윽한 골짜기가 동굴과 같다고 하여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6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곽동은 풍수학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물위에 성을 쌓아 물이 모이는 수구(水口)를 형성하고 회룡교(回龍橋)로 기운과 바람을 모으며 북두칠성을 본따서 골목을 조성하고 건물주변에 나무를 심어 조경의 목적을 이루었다. 곽상(郭上)과 곽하(郭下) 두 동네로 구성된 곽동촌의 동구밖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저 멀리로는 청산이 지켜서서 사자가 문을 지키는 풍수를 형성한다. 성문위의 태극무늬도 이곳의 풍수학적 경관을 잘 보여준다.

 

곽동촌의 역사는 송대까지 거슬러가며 하씨가보(何氏家譜)에는 궈둥촌이 원대에 발전하였다고 한다. 원 지정(至正) 10(1350) 우의후생 하수(何壽)가 산에 올라 궈둥촌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 집을 바라보다가 산이 중첩하고 고목이 하늘을 찌르며 푸른 계곡물이 흐르며 기이한 봉우리들이 겹쳐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되돌아가는 것을 잊었다고 한다. 이후 광둥안찰사부사(廣東按察司副使)인 외조부와 부모의 동의를 얻어 궈둥촌에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정착한 이후 640여 년 간 하씨(何氏)의 자손은 부단히 이어져 지금 현재 그의 후예가 약 2,000인에 달하며 명문거족으로 발전하였다.

 

곽동 사람들이 제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선조들이 많은 영재를 배출해냈다는 점이다. 송 휘종(徽宗)의 정승 하집(何执)부터 대대로 선비 집안이었다. 명청 두조대에만 공생(貢生) 10증광생(增廣生) 14품선생(禀膳生) 10부현수재(府县秀才) 114명이 나왔다. 산촌에서 인재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를 곽동사람들은 풍수의 덕분이라고 하였다.

 

곽동 지형은 확실히 독특하다. 삼면에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어 신선이 사는 곳 같다. 두 개의 시내물이 한곳에 모이면서 영성(寧性)을 더해준다. 북면은 평지가 펼쳐져 있고 좌우에는 푸른 산이 에워싸여 있어서 사자가 문을 지킨다.”는 말에 응하였다. 두 개의 시내물이 모여 서쪽 산으로 따라 촌을 에워싸고 흘러서 회룡교는 시내물 사이에 세워져 이 귀한 땅을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다.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무의 곽동촌

 

 

 

  <2017.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