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아대륙문화순례◈/인도문화권

요새와 왕자의 궁전 - 인도 아그라성 무심만버즈

蔥叟 2015. 6. 9. 06:05

요새와 왕자의 궁전 - 인도 아그라성 무심만버즈

 

Musamman Burj

 

아그라성은 부자간 반목의 상징으로 통한다. 반목의 두 주인공은 무굴제국 5대 황제인 샤자한(Shah Jahan)과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다. 샤자한은 건축왕으로 불릴 만큼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많이 남겼다. 15번째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난 아내 뭄타즈 마할(Mummtaz Mahal)의 묘당인 타지마할이 대표적이다. 22년간 수십만 명의 인력과 코끼리 부대를 동원해 인도 역사에 빛나는 금자탑을 완공시킨다. 아그라성 역시 그의 치세기에 증축이 거듭됐다. 성내 주요 건물 대부분이 샤자한 시대에 만들어진다.

아우랑제브는 샤자한의 셋째 아들로 본래 타지마할의 관리 책임자였다. 1652년 아우랑제브가 샤자한에게 보낸 편지에는 타지마할에 빗물이 새 보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어려서부터 군사 방면에 뛰어났던 아우랑제브는 형제들과 살육전을 벌여 1658년 무굴제국 6대 황제에 오른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샤자한은 아그라성에 유폐된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권력의 속성 때문이었다.

샤자한은 아그라성 안쪽 별궁의 대리석 팔각 타워인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에 갇힌다. 그리고 1666년 숨을 거둘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손바닥만 한 목욕탕이 딸린 침실은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삼만 버즈는 이름 그대로 '포로의 탑'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무삼만 버즈의 발코니에서 타지마할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깨어 있는 동안 샤자한의 유일한 낙은 야무나(Yamuna) 강 건너에 자리한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아그라성과 타지마할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지척이지만 아우랑제브는 아버지가 성을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샤자한은 아그라성에 유폐된 지 8년이 지난 후 주검이 되어서야 아내 곁으로 갈 수 있었다. 대리석 관에 안치돼 아내가 잠들어 있는 타지마할 묘당 안으로 옮겨졌다.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무심만버즈

 

 

 

<2015.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