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문화순례◈/터키문화권

서양의 역사가 시작된 곳 - 터키 트로이

蔥叟 2015. 1. 3. 03:47

서양의 역사가 시작된 곳 - 터키 트로이

 

호텔을 나선 우리는 고대도시 트로이를 향했다. 가는 길 곳곳에 트로이를 알리는 표지판들이 많았다. 정작 트로이는 세계 3대 허무 관광지로 유명하다. 즉 명성에 비하여 볼 것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트로이는 아나톨리아 북서부에 있던 고대도시이다. 우리에게는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하고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로 뮤명하다. 스카만데르 강 북쪽과 헬레스폰트 해협의 남쪽 어귀로부터 약 6.4km 떨어진 트로아스 평야에 있었다. 트로이 전설은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였으며, 호메로스 서사시의 근간을 이룬다. 광활한 유적 덕분에 트로이는 고대세계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적지가 되었다. 청동기시대에 트로이가 누렸던 세력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통로를 지배하는 전략적인 위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BC 3000~2000년에 번성한 문화 중심지로서, 트로아스의 농업 공동체들을 지배하던 왕권의 수도였다. BC 1100년경부터 버려졌다가 BC 700년경에 그리스 정착민들이 트로아스를 차지하기 시작하자 트로이에도 다시 사람들이 살게 되었으며 일리온이라는 이름으로 4세기까지 존속했다. BC 6세기말부터 이 지역은 페르시아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아시아 남서부의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가몬 왕국, 로마인들에 차례로 점령당했다. BC 85년 로마인이 약탈한 후 같은 해에 로마 장군 술라가 부분적으로 복구시켰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다른 황제들이 많은 애정을 기울였다. 그러나 324년에 콘스탄티노플이 건설되고 나서 일리온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갔다.

 

투르크인들이 히사를리크라고 불렀고 그리스·로마 시대의 일리온 유적을 포함한 것으로 오랫동안 알려졌던 구릉이 1822년 찰스 맥라렌에 의해 호메로스 시대의 트로이 소재지로 밝혀졌으나, 학자들이 그 사실을 인정한 것은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0년에 발굴을 시작한 이후였다. 1890년 슐리만이 죽은 뒤에도 그의 동료인 빌헬름 되르펠트에 의해(1893~94), 그후에는 신시내티대학교의 원정대에 의해(1932~38) 발굴작업이 계속되었다. 슐리만과 되르펠트는 집들이 건설되어 사람들이 살다가 마침내는 파괴되어 버린 아홉 기(紀)를 나타내는 9개 주요지층의 순서를 밝혀냈다. 제1~7기 트로이는 요새, 트로아스의 수도, 왕의 가족·신하·노예들이 살았던 왕의 거주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1~5기는 청동기시대 초기(BC 3000경~1900)와 대체로 일치한다. 이 기간 동안의 주민들이 에게 해 제도, 키클라데스 제도, 미노아 문명의 크레타 섬, 헬라도스 문화기의 그리스 본토에 살던 주민들의 선조였을 것이며, 아나톨리아 남서부 또는 시리아로부터 온 것으로 추정된다. 트로이 제6·7기는 청동기시대 중기와 말기(BC 1900경~1100)에 해당한다. 불과 한 세대 동안 지속되었던 제7a기는 BC 13세기경 발생한 화재로 파괴되었는데, 아마도 이때의 트로이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Iliad〉에 묘사된 프리아모스 왕의 도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의 파괴 이후 약 400년간 이곳은 사실상 버려졌다.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정착한 것은 제8기이며,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일리온은 제9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케네 문명은 트로이 전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와 "오디세이" 를 통해 잘 알려진 이 전쟁은 단순한 신화일 뿐이라고 알려졌는데, 1870년대 이후 이어진 트로이와 미케네에 대한 발굴 조사를 바탕으로 기원전 1250년 무렵에 실제 있었던 일로 추정되었다. 트로이 전쟁은 초기 그리스 사람들과 서(西)아나톨리아의 트로이인 사이에 일어난 전설적인 싸움이었다. 이후의 그리스 작가들은 그 시기를 BC 12세기 또는 BC 13세기경으로 추측했다. 그리스 역사상의 다른 어떤 사건보다도 이 전쟁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Iliad〉와 〈오디세이아 Odyssey〉를 위시하여 지금은 없어진 수많은 다른 초기 작품들에서 다루어졌고 고전주의 시대의 훌륭한 극작가들에게도 자주 소재가 되었다. 또한 로마(예를 들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Aeneid〉)와 이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민족문학에서도 두드러진다. 전통적인 설에 따르면, 트로이 왕의 아들인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달아나자 메넬라오스의 형제인 아가멤논이 트로이를 치기 위해 그리스 원정대를 이끌고 간다. 전쟁은 10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리스군이 불시에 습격할 무리를 안에 숨긴 커다란 목마를 남겨놓고 철수를 위장하는 방법을 써서 끝났다. 트로이 사람들이 그 목마를 도시 안으로 들여놓자 그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인들은 자기 편 군대에게 문을 열어주었고, 그리스 군대는 트로이를 약탈하고 남자들을 학살하고 여자들을 데려갔다. 이 설은 수세기 후에 기록되었고 어디까지가 실제 역사상의 사건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트로이

 

▲트로이

 

▲트로이

 

▲트로이

 

▲트로이

 

▲제2 트로이 복원도

 

제2 트로이 복원도

 

▲트로이

 

▲트로이

 

▲트로이

 

▲트로이

 

▲트로이

 

▲트로이

 

▲하인리히 슈리만(Heinrich Schliemann)

 

▲빌헬름 되르펠트(Wilhelm Dörpfeld)

 

▲칼 윌리암 블레겐(Carl William Blegen)

 

 

 

<2014.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