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선교장 활래정
아름다운 정자로 소문난 강릉의 활래정(活來亭)은 조선 후기의 명문가 고택인 ‘선교장(船橋莊)’에 있는 정자다. 열화당을 세운 다음 해인 순조16년(1816)에 이후(李?: 1773~1832)가 건립하였는데 현재 건물은 이후의 증손 이근우(李根宇,鏡農)가 고종43년(1906)에 중건하였다. 선교장 본채 뒤를 둘러싼, 나지막한 산에 펼쳐진 멋진 노송 숲과 정자, 정자 앞의 넓은 연못이 어우러져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하고 있다. 이곳은 주인의 넉넉한 인심에다 뛰어난 풍광 덕분에 고관이나 시인묵객이 끊임없이 드나들던 명소였다.
특히 지리적 환경 덕분에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구경하기 위해 가는 시인묵객이 많이 드나들며 교류하던 공간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하도 많이 드나들어 선교장 행랑채에는 서화를 표구하는 장인이 상주하고 환자를 돌보는 의원을 둘 정도였다. 추사 김정희, 흥선대원군 이하응 등 많은 유명 인사도 이곳에 드나들며 휘호를 남겼다. 일제강점기에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선교장을 찾았고, 최근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해 내한한 IOC위원들을 위한 차회(茶會)가 활래정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랬던 공간인 만큼, 활래정에 올라보면 처마나 기둥에 빈 공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편액과 주련이 가득 걸려있다. 특히 사방 처마 곳곳에 다양한 ‘활래정’ 편액이 6개나 걸려있어 눈길을 끈다.
활래’의 의미는 주자(朱子)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 중 한 부분이다. ‘조그만 네모 연못이 거울처럼 열리니(半畝方塘一鑑開)/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그 안에 떠 있네(天光雲影共徘徊)/ 이 연못이 이리 맑은 까닭은 무엇인가(問渠那得淸如許)/ 샘이 있어 맑은 물이 솟아나오기 때문이지(爲有源頭活水來).’ 활래정의 ‘활래’라는 명칭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위유원두활수래(爲有源頭活水來)’에서 따온 것이다. 활래정은 실제 서쪽 태장봉에서 끊임없이 흘러 내리는 맑은 물이 정자 앞의 연못으로 들어오고 그 물은 다시 경포호수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금장대
<2014.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