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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의 승탑 -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탑

蔥叟 2014. 7. 13. 06:27

실상사의 승탑 -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탑

 

片雲和尙塔

 

조계암터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승탑이 편운화상탑이다. 편운화상탑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여러모로 주목받는 승탑이다. 승탑의 크기도 왜소하고 형식도 비교적 단순하다. 탑은 크게 네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높이는 182cm이다. 대석은 높이 80cm로 윗부분은 원형으로 다듬어져 있고 지름이 48cm이다. 아랫부분은 엎어놓은 대접 형태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제일 아랫부분은 지름 24cm의 원형으로 무늬는 없다. 탑신은 시루형태로 가운데 부분에 4cm 정도의 띠를 둘렀으며 탑호와 건립 연대가 음각되어 있다. 탑신 위에는 삿갓 모양의 옥개석이 씌워져 있다. 옥개석의 지름은 100cm이며 높이는 33cm이다. 옥개석 위에는 높이 32cm, 삿갓부분에는 지름 33cm인 송이버섯 모양의 보주가 올려져 있.

 

▲편운화상탑

 

몸돌에 테가 하나 둘려 있고 태 위에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지만, 명문이 새겨져 있다.

○創祖洪陟弟子安峯創祖片雲和尙浮屠 正開十年庚午歲建

창건조사 홍척의 제자이며, 안봉사의 개창자인 편운의 부도이다. 정개 10년 경오년에 세운다

명문의 내용으로 보아 편운화상은 구산선문 최초 가람인 실상사를 세운 홍척국사의 제자이며, 성주 안봉사의 창건주임을 알 수 있다.
정개(正開)는 후백제 견훤이 사용한 연호이며, 경오년(庚午年)은 910년으로 추정된다. 
편운화상은 실상산문의 제3대 조사이다. 편운화상의 행적은 잘 알 수 없으나 실상산문의 개산조인 홍척국사의 상수제자였다편운화상은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홍척국사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지만 홍척국사가 후에 설악산에서 수철화상을 만나 제자로 삼고 자신의 법맥을 잇는 제2대조사로 삼는다즉, 수철화상과는 도반(道伴)이자 법형제였다.

 

▲편운화상탑

 

편운화상에 대해 기록을 문헌에서는 찾을 수 없다. 단지 수철화상탑비에 적힌 내용을 통해 그 행적을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편운이 증각대사 홍척의 제자이기 때문에 수철과는 사형사제간이다. 일부 연구자료를 보면 수철이 실상사 제2조, 편운이 제3조로 나온다. 만약 편운이 실상사 제3조였다면 탑과 탑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고, 탑의 형태가 홍척, 수철과 비숫해야 한다. 그러나 편운화상의 승탑은 홍척, 수철의 승탑과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수철을 실상산문의 주류로, 편운을 비주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수철의 문인들이 주도하던 실상산문은 900년대에도 신라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와 달리 편운화상 문인들은 892년 새로 건국한 후백제 편에 섰다. 그리고 910년 편운화상 승탑을 세우면서 후백제의 연호인 정개를 쓴 것이다.

 

 

▲편운화상탑

 

그래서인지 편운화상의 승탑은 조계암터에 잊혀진 채로 쓸쓸히 서 있게 되었다. 실상산문의 비주류였기 때문이다. 수철의 문인들이 주도하던 실상산문은 905년경에도 여전히 신라왕실과 밀접하였다. 그와 달리 홍척의 또 다른 제자인 安峯寺의 片雲和尙은 甄萱과 연결되었다. 편운이 910년경 입적하자 후백제의 지원으로 편운부도가 건립되었다. 이로보아 905년을 전후하여 실상산문은 수철을 계승한 수철계와 편운계로 분화되었던 듯하다. 수철계는 905년 이전까지 산문을 주도하면서 전통적인 친신라적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후 견훤의 세력이 강화되자 편운계가 견훤과 결연하면서 親後百濟勢力으로 변하였다.

 

▲편운화상탑

 

 시대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편운화상탑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 번 비주류로 떨어지면 영원히 비주류를 벗어나지 못한단 말인가? 편운화상탑은 그 역사성, 특이성,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로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어 정말 아쉽다. 하찮은 문화재자료도 못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뚜껑 덮인 향완 모양의 승탑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유일무이성이 있다. 역사적인 면에서도 후백제 때 만들어진 게 확실하다. 또 예술적인 면에서도 고귀한 단순(Edle Einfalt)과 조용한 위대(Stille Gröβe)라는 서양 고전주의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보물 정도로 지정해야할 것이다.

 

▲편운화상탑

 

 

 

<2014.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