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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임고서원 구서원

蔥叟 2014. 3. 29. 00:19

영천 임고서원 구서원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정몽주(1337∼1392)는 공민왕 9년(1360)에 과거에 급제하여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정승 자리에까지 오른 문신이다. 왜구 토벌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당시 긴장상태에 있던 명나라에 건너가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의 시조로 불리며 시와 글, 그림에도 탁월했다. 특히 시조 단심가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그의 충절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기울어가는 국운을 걱정하며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이방원(조선 태종)이 살해하였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세웠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에 다시 지었으며, 이 때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인조 21년(1643)에는 여헌 장현광을, 영조 3년(1727)에는 지봉 황보인을 추가로 모셨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철거되었으나 1965년에 정몽주의 위패만을 모시고 복원하였다.

 

   임고서원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서원과 신서원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구서원과 신서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짐작컨데 구서원은 임란 후 선조 때 지은 서원으로, 신서원은 1965년에 복원한 서원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구서원은 신서원의 남쪽 산비탈을 깎아서 계단식으로 건물을 배치하였다. 일반적으로 서원에서 보이는 전학후묘의 구조와 동재, 서재등의 건축구조를 가진 신서원과는 달리 구서원에는 사주문이라 부르는 외삼문 뒤로 강당이 자리잡고 강당 뒷편에 내삼문이 있고 내삼문 안쪽 가장 높은 곳에 사당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길게 담장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구서원은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들어가 볼 수가 없어서 아타까웠다. 그러나 맞은편의 조옹대에 올라 바라보면 구서원의 모습이 잘 보인다. 

 

▲임고서원 전경

 

▲구서원

 

▲구서원

 

▲구서원

 

▲구서원

 

▲구서원

 

▲구서원

 

▲구서원

 

▲구서원

 

▲구서원

 

▲사주문

 

▲사주문

 

▲사주문

 

▲사주문

 

▲강당

 

▲강당

 

▲내삼문과 사당

 

▲내삼문

 

▲사당

 

 

 

<2014.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