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문화순례◈/서역남로문화권

중국 슐러역사박물관 좌종당수복신강(左宗棠收复新疆)

蔥叟 2013. 9. 14. 07:02

중국 슐러역사박물관 좌종당수복신강(左宗棠收复新疆)

 

油画(좌종당이 신장을 되찾다)

作者 : 杨素明

 

   좌종당은 청나라 말기의 활동한 유능한 정치가로 청나라 말기에 일어난 모든 역사적 사건에서 큰 공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자는 계고이고 시호는 문양으로 1812년 지금의 상인현에서 태어났다. 좌종당은 후난성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1852년 태평천국의 세력이 후난성으로 확대되자 40살의 나이로 후난성의 막료가 되어 태평천국군의 공격에서 후난성 일대를 수비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외부에서 태평천국군이 공격을 가해오자 그동안 억눌리던 후난성의 농민들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지만 좌종당은 간단하게 진압해버렸다.

 

▲좌종당수복신강(左宗棠收复新疆)

 

   이 일이 있은 후 증국번에게서 자신의 상군을 지휘해 보라는 제안을 받게 되고 상군을 지휘하여 공을 세워 저장 순무라는 관직에 임명되었다. 좌종당은 저장 순무의 관직에 있으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원조를 얻어 저장 일대를 수복하는데 성공하였다. 1866년 좌종당은 이런 경험으로 해군양성의 중요성을 느껴 프랑스로부터 원조를 받아 푸저우의 중국 최초의 관영조선소를 설립하여 양무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이후 서북지방의 염군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중 좌종당이 부하들에게 해주었던 닭요리에 부하들이 좌종당의 이름을 붙여 좌종당계라는 음식이 탄생햇다는 이야기가 생겼다고도 한다. 한편 좌종당은 서북지방에서의 진압 이후 곧바로 러시아와 청나라 간의 국경지대인 이리지방에서 이슬람 국가인 야쿠브 한국이 세워지고 오스만 제국과 영국 등과 외교관계를 맺자 이를 공격하여 야쿠브 한국을 멸망시켰다. 또한 신장 지방에서 위구르족의 난이 일어나자 흠차대신의 관직에 오르고 이번에도 이를 진압하였다. 

 

   한편 야쿠브 한국을 멸망시켰음에도 이리 지방의 일부분을 러시아가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엇기에 청나라 정부는 러시아 군대의 철병을 요구했지만 러시아가 이를 거절하자 좌종당은 자신감에 차서 무력으로 해결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거절되고 베이징으로 소환되었다. 그는 그 이후 1884년 청프전쟁이 일어나자 평화적인 외교 활동을 펼치려 노력했지만 프랑스군이 푸저우를 공격하여 좌종당이 양성했던 함대를 격파하자 실의에 빠져 결국 1885년 사망하고 만다.

 

 

 

<2013.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