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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사 순례 - 문경 사불산 대승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좌상

蔥叟 2012. 7. 29. 05:46

대승사 순례 - 문경 사불산 대승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좌상

   

   대승사의 극락전은 대웅전에서 50m 가량 동쪽 약간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뒤쪽 더 높은 곳은 응진전이 있고 그 앞쪽으로는 명부전이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칸수는 대웅전과 같으나 그 규모는 작다. 자연석을 허튼층쌓기한 기단 위에 막돌 덤벙초석을 놓고 등근 기둥을 세웠다. 안으로는 우물마루를 갈고 후불벽 없이 3단으로 꾸민 불단 위에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고 그 좌우로 관음과 세지보살을 모셨다.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좌상

    

▲아미타여래좌상

 

   대승사 극락보전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그 복장유물이 2009년 10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금동아미타불 좌상은 몇 년 전까지는 같은 사찰 대웅전에 봉안돼 있다가 근래 극락전으로 이안(移安)했으며, 그 좌우에는 각각 협시불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자리잡고 있다. 양식적인 특성으로 볼 때, 14세기 무렵 고려시대 작품으로 학계에서 추정해왔다. 불상의 성분 분석을 위해 X-레이 조사를 하다가 놀랍게도 불상 육계 부분에서 불상 조성 당시에 납입됐다고 추정되는 묵서(墨書)가 적힌 다라니(불교에서 쓰는 주문)를 발견했다. 이 묵서에는 "대덕 5년 신축 5월20일에 궁궐도감 녹사별장인 정승설이 인출(印出.목판에 찍어 펴냄)했다"(大德五年辛丑五月二十日/宮闕都監錄事別將丁承說印出. /는 줄바뀜)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대덕 5년은 1301년이며, 고려 충렬왕 27년(1301)이 된다.

 

   나아가 불상 복부에 넣은 공양품들인 복장(腹藏)에서는 고려시대 다라니류 3종 12매와 같은 시대 묵서가 적힌 향낭(향을 넣는 주머니) 1점이 발견됐다. 3종 다라니는 아미타삼존다라니(阿彌陀三尊陀羅尼) 1매(1301년)와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 8매(충렬왕 18년<1292> 판각), 그리고 정확한 인출 연도는 불명이지만 고려후기로 판단되는 아자범자원상태장계만다라(阿字梵字圓相胎藏界曼茶羅) 3매로 구성된다. 이들 자료를 통해 이 금동 아미타불좌상은 1301년 무렵에 제작됐으며, 발원자 혹은 시주자는 궁궐도감 녹사별장인 정승설이라는 강력한 증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아미타여래좌상

 

▲아미타여래좌상

 

▲대세지보살상

 

   나아가 더욱 놀랍게도 지금까지는 출처 불명이던 국내 기관 및 개인 소장 일련의 묵서 자료 10여 장도 다름 아닌 이번 대승사 금동 아미타불 좌상 복장 유물 일부였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이들 묵서 자료는 대승사 복장품 묵서와 지질과 필체가 같을 뿐만 아니라 그 문구에서도 "大德五年五月二十日彫板 奴介'라든가 '興威衛保勝別將丁承說書', '良得卜仁莊子奴介'와 같은 대목이 보인다. 인출 연대가 똑같을 뿐만 아니라 발원자 혹은 시주자도 같은 정승설로 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승사 금동불상의 복장유물은 전부가 외부로 유출되지는 않고 이번에 발견된 다라니 일부 등은 왜 남았을까? 그 원인은 발견된 다라니류는 복장 깊숙이, 쉽게 꺼낼 수 없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 불상의 조성연대가 밝혀짐에 따라 고려시대 불상 연구의 기준작이 될 전망이다. 고려시대 불상 중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원래는 서산 부석사에 있다가 지금은 일본 쓰시마섬 관음사에 가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1330년)과 1333년 무렵 조성한 것으로 생각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관음보살입상과 금동대세지보살입상 정도밖에 없다. 대승사 금동불상은 그런 점에서 고려시대 불상 연구의 연대나 양식 등을 추정하는 기준작이 될 수 있다. 목조 불상 중에서는 1280년에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는 개심사 불상과 1274년 보수한 서울 개운사 소장 불상 등이 있지만, 보수한 연대만 알 수 있을 뿐 처음 제작한 연대를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관음보살상

 

 

 

<2012.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