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를 찾아서 - 경주 무장사 아미타조상사적비 방각탑본
<예산추사기념관>
조선후기에 경주 부윤이었던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는 영조 때 무장사 비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하를 보냈는데 노스님의 안내로 비편을 발견했다. 19세기는 청조의 문화가 동점(東漸)하던 시기인데 이대의 첨단학문은 고증학이었다. 고증학의 핵심연구방법은 금석문 연구였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금석문을 판독하고 해석하는 일을 중요시한 것이 아니라 비문의 일부분을 탁본하여 마음에 드는 부분을 오려서 서첩(書帖)을 만들어 글씨교본으로 삼았다. 그것이 바로 조선 유일의 탁본집인 낭선군(郎善君) 이우(李俁)의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이다. 이우는 비문들을 모두 부분적으로 탁본하여 제자들에게 서체를 가르쳤다. 다시 말해서 비문의 내용에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아미타조상사적비 방각탑본
19세기 청조의 문화가 점차 난숙해지면서 서체 분 아니라 비문의 내용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때 추사 김정희는 청의 옹방강, 옹방원 등과 교류하면서 금석문에 심취해 있었다. 한양에서 금석문을 찾아다녔고 북한산에서 진흥왕순수비도 발견했다. 여러 가지 비문을 탁본하여 중국에 보냈는데 이때 중국에 보낸 비문의 탁본을 모아서 「해동금석서(海東金石書)」를 만들어 역으로 조선에 보내오기도 했다.
조선에서 보내온 비문의 탁본을 살펴본 옹방강(翁方綱)은 해동 최고의 금석문은 왕희지체(王羲之體)를 집자(集字)한 무장사비문이라고 했다. 추사는 32세가 되던 1817년 경상도 관찰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대구에 온 길에 경주에 들러 무장사에 찾아왔다. 무장사에서 그는 비문을 발견하였는데 비편은 콩을 가는 갈돌로 쓰이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추사는 또 다른 비편 하나를 찾아 자신의 조사기(調査記)를 무장사비의 옆면에 새겨 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무장사 아미타조상사적비 방각'이다. 김정희는 무장사터에서 깨진 비석 조각을 주워 기쁘고 놀라운 나머지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그리고는 세상을 떠난 옹수곤(스승 옹방강의 아들)과 이 금석을 함께 즐기지 못함이 아쉽다는 기록을 남겼다. 방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번역은 이종문선생이 하셨다.
(1)此碑舊只一段而已 余來此窮搜 又得斷石一段於荒莽中 不勝驚喜叫絶也 仍使兩石 合璧珠聯 移置寺之後廊 俾免風雨 此石書品 當在白月碑上 蘭亭之崇字三點 唯此石特全 翁覃溪先生以此碑爲證 東方文獻之見稱於中國 無如此碑 余摩挲三復 重有感於星原之無以見下段也 丁丑四月廿九日 金正喜題識
이 비석은 옛날에는 다만 한 덩이 뿐이었다. 내가 이곳에 와서 샅샅이 뒤지다가 황량한 수풀 가운데서 부러진 돌덩이 하나를 찾게 됨에 놀라고 기뻐서 크게 부르짖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두 덩이의 돌을 소중한 구슬처럼 연결하여 절의 뒤 행랑에 옮겨 놓아 비바람을 면하게 하였다. 이 비석에 새겨진 글씨의 書品은 白月碑의 위에 놓아야 마땅하다. 蘭亭序의 ‘崇’字의 세 점이 오직 이 비석에서만 온전하여 覃溪 翁方綱 先生이 이 비석으로 證據를 삼았으니, 우리나라의 文獻이 中國에서 일컬어짐이 이 비석만한 것이 없다. 내가 여러 번 어루만지면서 星原(옹방강의 아들 翁樹崑의 號)이 새로 발견한 아래 덩어리를 볼 수 없음을 다시금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정축년(1817년) 4월 29일 김정희 씀.
(2) 此石 當係左段 何由起星原於九原 共此金石之緣 得石之日 正喜又題 手拓而去
이 돌은 응당 왼 쪽 덩어리에 이어진 것일 터다. 무덤 속에 있는 성원을 어떻게 일으켜 세워 이 금석문의 인연을 함께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돌을 찾은 날 정희가 또 이렇게 적고 손수 탁본을 해서 가노라.
<2011. 11. 20>
*예산의 추사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던 이 탑본은 숭복사비편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이를 그대로 필자가 소개하였는데, 이 비편이 숭복사비편이 아니라 무장사 아미타조상사적비의 방각탑본이라는 것을 밝혀내신분은 이종문 선생님이다. 그리고 친절하게 번역까지 해 주셨다.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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