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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슴무늬 수막새(鹿文 圓瓦當)

蔥叟 2011. 1. 6. 05:33

중국 사슴무늬 수막새(鹿文 圓瓦當)

<국립중앙박물관>

 

전국시대 진(秦)

 

   상고시대의 민속이나 무속 신앙에서는 사슴이 주요 신앙대상으로 등장하였다. 경북 고령 지방에서 발굴된 고분에서 나온 사슴뿔은 당시에 녹각 숭앙(鹿角崇仰)이 행해졌음을 시사해 준다. 부장품으로서의 사슴뿔은 수사슴이 누리는 권위가 죽은 이에게 옮겨졌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사슴뿔은 가부장(家父長) 및 공동체 수장(首長)의 상징일 수 있다. 죽은 이의 부장품이라는 점에서 사슴은 영생 또는 재생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사슴이 후대에 와서 십장생의 하나로 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사슴무늬 수막새(鹿文 圓瓦當)

 

   사슴은 영생장수(永生長壽)의 상징물로 불멸의 신성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짐승으로 여겼다.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는 ‘사슴은 천년을 살며 500세가 되면 색이 백색으로 변한다’고 하여 장수를 상징하였다. 『사문유취후집(事文類聚後集)』에는 ‘사슴은 천년을 살면 창록(蒼鹿)이 되고 다시 백년이 지나면 백록(白鹿)이 되고 다시 오백 년이 지나면 현록(玄鹿)이 된다’라고 되어 있다. 사슴이 영생이나 장수의 상징으로 된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사슴을 대지의 동물로 믿었기 때문이다. 나뭇가지 모양의 사슴뿔은 봄에 돋아나 자라면서 딱딱한 각질로 되었다가 이듬해 봄이면 떨어진 후 다시 돋는다. 이와 같은 순환기능을 지녔기 때문에 사슴을 대지의 원리를 갖춘 영생동물로 여긴 것이다.


   사슴무늬는 우애·복록(福祿)의 교훈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삼국사기』에 부여의 사신이 고구려 태조왕에게 꼬리가 긴 토끼와 뿔이 세 개 달린 사슴을 바치자, 태조왕이 이를 상서물(祥瑞物)이라 해서 죄인들을 풀어 주었다는 내용이 있다. 특히 흰 사슴은 왕이 정치를 잘하고 효도를 행하며 선왕들의 거룩한 법도를 잘 지켜나갔을 때 나타난다고 하여 신령하게 여겨졌다. 한편 사슴은 학과 함께 신선의 벗으로서, 신선이나 도인(道人)과 같이 어진 품성을 갖춘 것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사슴은 상상의 동물인 기린(麒麟)과 닮아 작은 기린으로 여겨져 신령시 되었다. 무리를 지어 사는 사슴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머리를 높이 들어 뒤에 낙오자가 없는지 살피는 속성을 지녀서 우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한 사슴을 그린 그림은 관리들의 봉급[祿]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중국어의 鹿(록, 사슴)자와 祿(록, 녹봉)자가 동일음인 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 신화에서 사슴은 지상과 천상을 매개하는 동물로 그려졌다. 주몽[동명왕(東明王)]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나서 송양왕(松讓王)이 지배하는 비류국을 합병하려고 할 때, 흰 사슴을 잡아 해원(蟹原)이라는 언덕의 큰 나무에 거꾸로 매달고 저주를 내렸다. 그 저주는 하늘이 비를 내려 비류왕의 도읍에 물난리가 나도록 만들지 않으면 사슴을 놓아주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슴이 슬피 우는 소리는 낮과 밤을 이어 하늘에 메아리쳤고, 결국 천제(天帝)에까지 도달해 큰비가 내리게 되었다. 비류국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고, 두려움에 송양왕과 그의 백성은 주몽에게 항복하였다. 이 신화에서 사슴은 주술의 효험을 보장하는 영적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의 제사조를 보면 고구려는 매년 3월 3일에 국가적인 규모로 사냥을 했는데 이 때 잡은 멧돼지와 사슴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여기서 사슴은 제물로 쓰인 것으로 인간의 뜻을 신에게 전달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2010.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