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낙양 용문석굴 간경사동(看经寺洞, Kānjīngsìdòng)
용문석굴을 양분하는 이하 동쪽 그러니까 동산(東山)에 간경사(看经寺)라는 석굴이 있다. 측천무후의 시대에는 서산(西山)의 남방 부근까지 석룽이 축조가 되었으므로, 측천무후 말에서 현종에 걸친 시기에는 동산에도 산과 들을 깎아 석굴을 축조하게 되게 되었다. 간경사동(看经寺洞)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간경사동은 동산에서 규모가 가장 크지만 석굴입구부터 화재로 그을린 흔적이 역력하다. 간경사동은 무주시기의 작품으로 경주 석굴암 보다 조성시기가 앞선다. 그리고 석굴 내부 존상들의 배치가 석굴암의 그것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간경사동은 석굴암의 모델이었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인도에서 불경을 가지고 오던 한 승려가 이 곳에서 습기찬 불경을 꺼내 햇볕에 말리고 돌봤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간경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용문석굴에서 간경사가 유명한 것은 불타입멸 이후 마하가섭(迦葉)에서부터 아난(阿難), 말전지(末田地), 상나화수(商那和修) ...... 보리달마(菩提達摩)까지 의발을 전수받은 29분 전등 조사들의 조각상 때문이다. 이 조각상은 29분 조사들의 개성을 한 분 한 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1939년, 석가모니에게 의발을 전수받은 가섭 존자의 조각상이 누군가에게 도굴돼 사라졌다. 2001년 4월, 캐나다 국가미술관이 중국 당나라대 인물 조각상 1구를 중국으로 돌려 보냈다. 중국으로 돌아온 조각상이 바로 이 가섭존자 상이었다. 가섭 존자 조각상은 당초 영국에서 미국으로, 또 캐나다로 팔려 다니다가 캐나다의 한 개인 소장가가 국가에 기증하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간경사동(看经寺洞)
▲간경사동(看经寺洞)
▲간경사동(看经寺洞)
▲간경사동(看经寺洞) 본존불
▲간경사동 조정(看经寺洞 藻井)
<2010.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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