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보봉 출토 진시황26년조서철권(秦始皇二十六年诏书铁权)

2010. 9. 9. 06:57◈실크로드문화순례◈/낙양문화권

중국 보봉 출토 진시황26년조서철권(秦始皇二十六年诏书铁权)

<하남박물원>

             

泌阳一帶自公元前 273年秦置南阳郡入秦, 至公元前 207年 秦国灭亡, 屬秦 60余年. 这里发现的多座秦墓中, 出土器物类別丰富. 器铭中有“平安君”, “平安君”之称, 且纪年方式与秦相同, 专家认为其墓主曾就封君(侯)食邑于平安邦, 后葬南阳郡.

 

판독문

 

二十六年

皇帝尽幷兼天下诸侯      黔首大

立号为皇帝                   乃诏丞相   状   绾

法度量则不壹歉             疑者皆明壹之

 

▲진시황이십육년조서철권(秦始皇二十六年诏书铁权)

 

   진시황은 사치의 상징인 아방궁 건설과 전무후무한 분서갱유 등으로 폭군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주된 이유는 그가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기 때문이지만, 지역마다 달랐던 도량형을 ‘척관법’으로 일원화한 것도 중대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에 진시황이 도량형을 통일하였고, 그전의 춘추전국시대에도 그러한 노력은 있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자 일단 글자와 도량형부터 진나라 것으로 개혁했다. 이 때에 개혁한 것은 큰 변화없이 서한에 이어졌고, 동한을 거쳐 촉한과 6조시대에까지 이르렀다. 당나라 때에 다시금 도량형 개혁이 있었고, 이 때에 1척이 30센치 정도로 정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척관법 시행으로 지역마다 제도와 표준 용기가 달라 일일이 환산해야 했던 수고를 덜게 되고, 세금도 동일한 단위로 걷을 수 있게 된 것이다.

 

   BC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중앙집권 정책의 일환으로 도량형을 통일을 추진하였는데 현재 그 물증으로 남아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철권이다. 철권은 진나라 때 사용한 저울추롤 말한다. 권은 원래 천칭의 추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저울추는 균형점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어서 나중에 ‘권세’의 의미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철권은 사료의 기록만으로 그 존재가 알려져 오다가 1973년 진시황릉에서 철권이 출토되면서 그 실체가 확인되었다. 철권은 지나라의 저울추라 하여 진권(秦權)이라고도 부른다.

 

▲진시황이십육년조서철권(秦始皇二十六年诏书铁权)

   

   철권의 표면에는 2개의 조서(조명, 조칙 : 임금의 뜻을 일반에게 알리는 문서)가 전서체로 새겨져 있는데, 진시황 26년인 BC221년에 새긴 것(40字)이고 다른 하난는 그의 뒤를 이은 2세황제 호해(胡亥)가 집권 원년인 BC209년에 새긴 것(60字)으로 총 100字이며 이를 兩韶所文權‘(두개의 조서가 있는 추)라고 한다. 진시황의 조서는 ‘천하를 통일하면서 백성의 생활이 안정되었고 황제라는 칭호를 정립하였으며 도량형이 일치하지 않아 이를 통일시킨다’는 요지이다. 2세 황제 조서는 ‘도량형을 통일한 것은 시황제이고 후손은 단지 뒤이어 실행할 뿐인바, 이 조서를 좌측에 새기니 사용함에 있어서 어떠한 의혹도 갖지마라’는 내용이다. 이 두 번째 조서에는 진시황이 도량형을 통일시켰음을 명확히 기재하였을 뿐 아니라 법률의 형식으로 그것을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다.

 

   철권은 그 이후에도 진시황릉에서 조금씩 나왔으며 산시성, 감숙성, 산동성 등지에서도 발견되엇다고 한다. 모두 진시황의 조서가 새겨져 있고 또 더러는 2세 원년의 조서까지 새겨져 있어 진시황 때에 전국적으로 통일된 도량형제를 사용하기 시작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진나라 도량형제에서 사용하던 무게의 단위는 1석(石)=4균(鈞)=120근(斤)이고 1근은 16냥(兩)이다. 현재 중국에서 사용하는 1근은 10냥=500g이지만 옛날의 1근은 596.816g이었다. 철권의 중량은 4균짜리부터 1근짜리 까지 다양하게 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진나라의 도량형이 현재 우리 도량형의 근간이 되었다.

 

▲명문부분

 

진시황 이십육년 조서 철제저울추

秦代(BC221~BC207年)

1986年 宝丰商酒务乡古城村 出土 

 

 

 

<2010.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