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안양 출토 '守父乙' 동치(铜觯)

2010. 9. 5. 06:43◈실크로드문화순례◈/낙양문화권

중국 안양 출토 '守父乙' 동치(铜觯)

<하남박물원>

       

   조선시대에 향촌의 유생들이 학교·서원 등에 모여서 나이 많고 덕 있는 사람을 주빈으로 모시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하던 의식을 향음주례라고 한고 이때 마시던 술을 향음주라고 한다. <주례>의 사도교관직조(司徒敎官職條)에 보면 지방이 향(鄕)·주(州)·당(黨)·족(族)·여(閭)·비(比) 등의 단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중 당에서 행하는 의례가 향음주례라고 되어 있다. 또한 〈주례〉 지관(地官) 향대부조에는 향학에서 학업을 닦고 난 후 제후의 향대부가 향촌에서 덕행과 도예를 고찰하여 인재를 뽑아 조정에 천거할 때, 출향에 앞서 그들을 빈례로써 대우하고 송별잔치를 베푼다고 되어 있다. 〈의례〉에 보면 향음주란 향대부가 나라 안의 어진 사람을 대접하는 것으로, 향음주례를 가르쳐야 어른을 존중하고(尊長), 노인을 봉양하는 것(養老)을 알며, 효제(孝悌)의 행실도 실행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향음주례가 향촌사회에서 지식층에 베푸는 주요한 행례로 시행되기도 했다.

 

▲'守父乙' 동치(铜觯)

 

'守父乙' 적힌 청동잔(酒器, 향음주에 쓰는 너 되 들이 잔)

商代后期(BC1300~BC1046年)

安阳市小屯 出土

 

   중국의 경우를 보면 후한시대인 30년(건무 6)에 이충수(李忠守)가 단양에서 봄·가을로 향음주례를 행했고, 59년(영평 2)에는 여러 나라(國), 현(縣), 도(道)에서 향음주례를 행했다. 또한 당나라 때인 677년(정관 6)에는 〈향음례〉를 반포하여 매년 주현의 장관에게 명해 어른과 젊은이를 거느리고 의례에 따라 행하게 했다. 명나라 태조 때는 향음주례 조직을 상세히 규정하여 유사가 학관과 더불어 나이 많은 사대부를 거느리고 학교에서 행했다. 민간의 이사(里社)에서도 100호를 단위로 모여 이장이 주관했으며, 100호 내에서 최연장자를 정빈(正賓)으로 하고 나머지는 나이 순서로 자리를 정해 계절마다 이(里)에서 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인종 때인 1136년에 과거제를 정비하면서 여러 주의 공사(貢士)를 중앙에 보낼 때 향음주례를 행하도록 규정한 일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일찍부터 향음주례를 시행하려 했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 의하면, 정표(旌表)가 절의(節義)를 장려하는 것이라면 향음주는 예손(禮遜)을 가르치는 것이라 했다. 집현전에서 세종의 명을 받고 명나라의 제도를 참고하여 상정(詳定)해서, 1474년(성종 5)에 편찬했던 <국조오례의>에 수록했다. 기록에 의하면, 향음주의는 가례의 하나로 매년 10월에 한성부와 각 도 그리고 모든 주·부·군·현에서 길일을 택해 치렀다. 그 고을의 수령이 주인이 되어 나이가 많고 덕이 있으며 재주와 행실이 갖추어진 사람을 주빈(主賓)으로 삼고, 그밖의 유생을 빈으로 하여 서로 모여 읍양(揖讓)하는 예절을 지키며 주연을 함께 하고 계(戒)를 고했다. 또 주인과 손님 사이에 절도 있게 헌수하여 연장자를 존중하고 유덕자를 높이며, 예법과 사양의 풍속을 일으키도록 했다. 이러한 향음주례는 나이 많고 덕행자를 내세우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족 상호간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향음주례를 향사당에서뿐만 아니라 향교·서원 또는 조용한 곳을 골라 시행했다. 따라서 향음주례만을 별도로 시행하기도 하지만 서원행례·향약례·향사례 등의 각종 행례에 시행했다. 향음주례는 향약행례에도 수용되면서 약회의 한 절차가 되기도 했다. 향회독약법 또는 향회의 규례에 향음주례의 기본절차가 간략히 들어가기도 했으며, 모여서 향음주례를 간략히 행하고 끝난 뒤 약문을 읽는 순서를 가지고 그뒤의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0.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