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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가미신사(鏡神社) 소장 수월관음도

蔥叟 2009. 11. 26. 08:34

일본 가가미신사(鏡神社) 소장 수월관음도

<영인본,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달이 비친 바다 가운데 금강보석(金剛寶石)에 앉아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으로 고려시대 불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일본 규슈 가라쓰시의 가가미신사(鏡神社)에 소장 중인 수월관음도는 세로가 4.19m, 가로가 2.54m의 어마어마한 크기로 가장 아름다운 고려 불화라고 한다. 투명한 베일을 걸친 관음보살의 고귀한 자태가 어둠 속에서 마치 달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현신하는 것 같은 신비한 효과가 있는 데에서 표현기법상의 우수한 경지를 엿볼 수 있는 국보급 문화재라고 한다. 그런데 ≪고려사≫ 1357년(공민왕 6) 9월 26일의 기록에는 "왜구가 승천부(지금의 개성 개풍군·판문군의 남부)의 흥천사에 침입해 충선왕과 계국대장공주의 초상화를 가지고 갔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이 가가미 신사의 "수월관음도"는 이때 도둑맞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수월관음도(고려, 1310년)

  

▲관음보살

 

   1310년(충선왕2)에 궁중의 여러 화원들이 이 수월관음도를 공동 제작하기 위해 거대한 한 폭
(세로419cm 가로254.2cm)의 비단을 사용하였다. 고려불화 중 가장 큰 대작大作인 동시에 왕실발원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수월관음도는 숙비叔妃인 김씨의 발원에 의해 내반종사內班從事의 직책을 가진 궁중화가 김우문 등이 그렸으며, 이 수월관음도는 섬세한 필치의 명확한 형태묘사, 풍부한 금니의 사용, 아름다운 색채, 치밀한 문양 등에서  궁중화원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충선왕의 총비寵妃였던 숙비는 언양군彦陽君 김문연金文衍의 여동생으로 과부였으나 1297년 충렬왕비인 원성왕후가 죽자 그해 8월 세자(충선왕)가 왕을 위로하기 위하여 왕에게 바쳤으며 1308년 충렬왕이 죽은 후 충선왕이 숙비로 삼았다. 이 수월관음도를 제작한 목적은 알 수 없으나 충렬왕 사후 1310년 특별주문에 의해 직조된 비단 크기라든가 여러 궁중화원이 동원된 점으로 미루어 충렬왕의 극락왕생을 빌며 충선왕과 숙비 자신의 복福을 기원 했던 그녀의 권세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관음보살 상호

 

▲선재동자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란 글자의 뜻 그대로 달이 비친 바다 가운데 금강보석金剛寶石에 앉아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이다. 수월관음은 살아서는 재난과 질병을 막아주고 죽어서는 극락정토로 인도해주는 관음보살의 하나로, 《화엄경》 입법계품에 의하면 관음보살은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보타락가산에 거주하면서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공상적인 분위기로 묘사되는 보타락가산은 온갖 보배로 꾸며졌고 지극히 청정하며 맑은 물이 솟아나는 연못이 있다. 고려시대 유행한 수월관음도는 이 보타락가산을 배경으로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은 관음보살이 설법하는 장면을 도상화한 것이다. 선재동자는 구도자로서 53선지식을 두루 찾아 뵙고 진리를 터득했다는 인물로, 53선지식 가운데 28번째가 관음보살이고 그 장면을 도상화 한 것이 바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이다.   

 

   일반적인 수월관음도는 오른쪽을 향한 측면관의 관음보살이 푸른 물로 둘러싸인 암굴 속에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올린 반가좌의 자세로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으며, 문수보살의 지시에 따른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는 수월관음도가 대부분이다. 이외에도  버드나무가지를 꽂은 정병과 한 쌍의 청죽靑竹 등의 표현은 호화스럽고 정교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한 특징이다.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는 대부분의 고려 불화들이 규모가 작은 것에 비해 가로 254cm에 세로 430cm로 한·중·일 세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화려하다. 에도시대(江戶時代)의 기록을 보면 270cm에 500cm 였다고 되어 있어 현재 네 변이 조금 잘린 채 장황된 상태를 감안하면 원화는 더 크고 장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은 관음보살이 화려하게 장식된 바위 위에 반가부좌한 자세로 부들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그 뒤로는 두 그루의 대나무가 서 있고 앞쪽 정병에는 버들가지가 꽂혀 있다. 관음보살은 일반적인 수월관음도와 반대로 화면 왼쪽을 향해 앉아 있어서 선재동자도 오른쪽 하단에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수월관음도(부분)

 

▲정병

   

   정병은 깨끗하고 맑은 물을 담는 물병이다. 불교에서 물을 담는 용기는 많이 있지만, 물을 넣는 주입구가 몸체에, 물을 따르는 주출구가 병목 위에 붙어 있는 것을 특별히 정병이라 일컫는다. 이러한 모양의 것을  북송의 서긍이 고려를 다녀간 후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도 정병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하던 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정병은 인도에서 수행하는 승려가 마실 물을 담던 일상용기였다. 그런데 청관음경에는 관음보살이 버드나무 가지와 맑은 물로 병을 고친 이야기가 나온다. 맑은 물을 담는 용기인 정병은 곧 관음보살의 상징이 되었으며 불교의 의식구나 공양구로도 활용되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형태의 벙병은 중국에서는 당대 이후 많이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이세는 관음신앙의 유행과 더불어 통일신라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였다.

 

 

 

<2009.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