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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안 대자은사(大慈恩寺, Dàcíēnsì)

蔥叟 2009. 10. 3. 06:25

중국 서안 대자은사(大慈恩寺, Dàcíēnsì)

 

   대자은사(大慈恩寺)는 중국 산시성[陝西省]의 고도, 시안시 남동쪽 교외에 있는 불교사원이며, 삼장법사 현상의 연고 사찰로 알려져 있다. 그 옛 땅은 당나라의 수도 창안현성[長安縣城]의 남팔지리(南八支里)에 세운 고찰로 위치는 성내 진창방(晉昌坊)의 '동쪽'에 있었다. 수나라 대흥성에 있던 무루사(無漏寺, 일설에 정각사)의 옛 땅에 648년(정관 22년) 황태자 이치가 돌아가신 모후 문덕황후(文德皇后)의 명복을 빌기위해 건립한 것이 대자은사이다. 그 규모는 탑머리 10수원을 포함해, 건축물은 총수 1,897칸, 승려만 300명이 넘게 있었던 큰 절이었다.  652년(영휘), 대안탑이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현장이 인도·서역으로부터 지참한 불상이나 경전을 수장하기 위한 탑이었다. 대자은사는 모란의 명소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고 그것을 읊은 많은 한시가 알려져 있다. 845년(회창 5년), 무종에 의한 회창의 폐불 때에는 대천복사, 서명사, 대장엄사와 함께 폐사를 면했다. 자은사는 중국 자은종(慈恩宗)의 조정이지만,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쇠퇴하였다.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와 귀국한 현장은 자은사의 상좌로 있으면서, 번경원에서 불전의 한역 사업에 종사했다. 자은사에서 현장의 불경 번역은 658년(현경 3년)까지 11년에 걸쳐 40 여부의 경전이 한역되었다.현장의 문하에는 신라승 원측(圓測)·승장(勝莊)·신방(神昉)·지인(智仁)등의 고승이 있었다. 해동에서부터 당(唐)에 간 많은 학승(學僧), 산승(山僧), 지식인(知識人)이 번경원(飜經院)을 보기 위해 찾아들었다고 생각된다. 위 고승들은 현장 아래에서 언제나 증의(證義), 필수(筆受), 철문(綴文)의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특히 신방은 대소승경론(大小乘經論)에 정통하였다.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를 '大乘昉' 또는 '昉法師'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는 현장을 20년간 따라 다닌 수제자였다. 현장이 죽은 뒤에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자은사(大慈恩寺)

 

▲대자은사(大慈恩寺)

 

▲종루

 

▲경루

 

▲대안탑

 

▲대자은사(大慈恩寺)

  

▲대자은사(大慈恩寺)

 

▲대편각당(大遍覺堂)

 

▲대편각당(大遍覺堂)

  

▲대편각당(大遍覺堂)

 

▲대편각당(大遍覺堂)

 

▲대편각당(大遍覺堂)

 

▲대편각당(大遍覺堂)

 

▲현장법사상

 

 

 

<2009.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