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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신라 적성비(赤城碑)

蔥叟 2008. 7. 11. 08:03

단양 신라 적성비(赤城碑)

 

   적성비는 삼국시대에 신라가 죽령을 넘어 단양 일대의 고구려 영토를 차지하여 국경을 넓히고, 이곳의 백성들을 선무한 표적으로 세운 것으로, 1978년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 조사되었다. 당시 진흥왕이 명하여 신라 척경(국경개척)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사람 야이차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장차 이와같이 신라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국가정책의 포고내용이 담겨있다. 

 

▲적성비(赤城碑) 비각

 

▲적성비(赤城碑)

 

   이 비문에는 국왕의 명을 받은 고관 10명의 이름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진흥왕 때 많은 공을 세운 인물로 이사부, 비차부, 무력 등이 주목된다. 이러한 인물들이 활동했던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이 비의 건립연대는 진흥왕 6~11년(545~550)경으로 추정된다.

 

   비문은 크게 세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문단은 국왕이 대중등(大衆等)이란 직명을 가진 喙部출신의 이사부지(伊史夫智)를 비롯한 9인의 고관들에게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도록 교(敎)를 내린 부분이다. 교의 내용은 비문에 보이는 전체내용을 가리키는 듯한데 이 고관들은 고구려의 적성지방을 공략하는데 직접 참여한 군사지휘관들로 여기에는 김유신의 조부로서 문헌상에도 확인되는 무력(武力)을 비롯한 인물이 있어 주목된다. 

 

▲적성비(赤城碑)

 

▲비문

 

   둘째문단은 적성지방 출신의 야이차란 인물이 행한 어떤 공로를 기려 그의 처 등 가족들 및 그와 일정한 관계에 있는 인물들을 포상하는 내용이다. 포상의 대상은 몇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구체적인 포상의 내용은 각기 다르다. 이는 그들이 주인공인야이차(也?次)와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수행한 역할에서도 어느정도 차이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세째문단에는 비문의 마무리 부분으로 결정된 사실을 현장에서 관련자들에게 전달하고 실제로 집행한 사람과 비를 쓰고 세운 인명을 열거하였는데 왕경인과 지방민의 두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문

 

▲비문

 

<판독문>

□□年□月中王?事大衆等喙部伊史夫智伊干
支沙喙部豆?智干支喙部西夫叱智大阿干
支□□夫智大阿干支內禮夫智大阿干支高頭林
城在軍主等喙部比次夫智阿干支沙喙部武力智
阿干支文村幢主沙喙部?設智及干支勿思伐
城幢主喙部助黑夫智及干支節?事赤城也?次
□□□□中作善懷懃力使死人是以後其妻三
□□□□□□□□□□□許利之四年小女師文
□□□□□□□□□公兄文村巴下干支
□□□□□□□□前者更赤城烟去使之後者公
兄□□□□□□□□異葉耶國法中分與雖然伊
□□□□□□□□□子刀只小女烏禮兮撰干支
□□□□□□□□使法赤城佃舍法爲之別官賜
□□□□□弗兮女道豆只女悅利巴小子刀羅兮
□□□□□合五人之別?自此後國中如也?次
□□□□□□懷懃力使人事若其生子女子年少
□□□□□□□兄弟耶如此白者大人耶小人耶
□□□□□道使本彼部棄弗耽?失利大舍
村幢主使人□□□□勿思伐城幢主使人那利村
□第次□□□□□人勿支次阿尺書人喙部
□□□□□□□使人石書立人非今皆里村
道使□□□□□智大烏之

 

<해석문>

(첫째) … (년) … 월에 왕이 대중등(大衆等)인 탁부(喙部) 출신의 이사부지(伊史夫智) 이간지(伊干支), 사탁부(沙喙部) 출신의(?) 두미지(豆?智) 피진간지(??干支), 탁부(喙部) 출신의 서부질지(西夫叱智) 대아간지(大阿干支), 口부지(口夫智) 대아간지(大阿干支), 내례부지(內?夫智) 대아간지(大阿干支), 고두림성(高頭林城)에 있는 군주(軍主)들인 탁부(喙部) 출신의 비차부지(比次夫智) 아간지(阿干支), 사탁부(沙喙部) 출신의 무력지(武力智) 아간지(阿干支), 추문촌(鄒文村) 당주(幢主)인 사탁부(沙喙部) 출신의 도설지(?設智) 급간지(及干支), 물사벌(勿思伐 : 城 幢主)인 탁부(喙部) 출신의 조흑부지(助黑夫智) 급간지(及干支)에게 교(敎)하시었다.


(둘째) 이 때에 적성(赤城) 출신의 야이차(也?次)
에게 교(敎)하시기를 …중에 옳은 일을 하는데 힘을 쓰다가 죽게 되었으므로 이 까닭으로 이후 그의 처(妻)인 삼(三) … 에게는 … 利를 허(許)하였다.


(세째) 사년 소녀(小女), 사문(師文), 
… 공형(公兄)인 추문촌(鄒文村) 출신의 파진루(巴?婁) 하간지(下干支) …  전자(前者)는 다시 적성연(赤城烟)으로 가게 하고 후자(後者) 공형(公兄)은 …  이엽(異葉)이건 국법(國法)에는 분여(分與)하지만 비록 그러하나 伊 … 子, 도지(刀只) 소녀(小女),  오례혜(烏?兮) 찬간지(撰干支) … 법(法)을 적성전사법(赤城佃舍法)으로 만들었다.


(넷째) 별도로 관(官)
은 …  불헤(弗兮) 여(女), 도두지우열리파(道豆只又悅利巴) 소자(小子), 도라혜(刀羅兮) … 합하여 5인(五人)에게 … 를 내렸다.


(다섯째) 별도로 교(敎)하기를 이후로부터 나라 가운데에 야이차(也?次)와 같이 … 옳은 일을 하여 힘을 쓰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일하게 한다면
만약 그가 아들을 낳건 딸을 낳건 나이가 적건 (많건) … 형제이건 이와 같이 아뢰는 자가  대인(大人)인가 소인(小人)인가 …


(여섯째)  … 部
출신의 나불탐학실리(奈弗耽?失利)  대사(大舍), 추문(鄒文)(촌) … 물사벌성당주사인(勿思伐城幢主使人)은 나리촌(那利村) … 인(人)은 물지차(勿支次) 아척(阿尺), 서인(書人)은 탁부(喙部) 출신의 … 인석서립인(人石書立人)은 비금개리촌(非今皆里村) … 지(智) 대오(大烏)이다.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Ⅱ(1992)]

 

 

 

<2008.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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